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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삼일 글쓰기 Nov 17. 2019

#4. 1주일 뒤 수능이라며? 얘들아 공부해야지

 1주일 뒤 수능이라며? 얘들아 공부해야지


1주일 뒤 수능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오늘은 인근의 학교를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 찰나, 교장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손으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 좋은 병균들이 옮겨오는 경우가 하다하다고 한다. 아마, 교장선생님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교장선생님은 올해로 나이가 54세로, 무려 12년간 인도네시아의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장 직을 수행하셨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1년도 하기 힘든 일을 12년씩이나 일을 하셨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선생님은 굉장히 강직하신 분이었다. 가끔은 고지식하고 원리원칙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할 수 있으셨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종종 “나도 이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어요.”라고 말을 하곤 하셨다.“지쳤다.” 라고 말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표정이 어찌나 쓸쓸해보였던지... 왠지 순간 가슴이 아팠다. 꼿꼿하시던 그 모습만큼이나, 나약해진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왠지, 부쩍 성장해가면서 점점 어깨가 쪼그라들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날은 하루 일정 없이 쉬기로 했다. 나는 밀린 빨래를 하고,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찌작(작은 도마뱀)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쫓아내고 싶었지만, 어찌나 재빠른지…….


찌작은 항상 내 침대 밑에서 생활했는데, 가끔 침대 밑에서 나와 방 안에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어주곤 했다. 찌작이 자는 사이에 내 몸을 기어 다니지 않을까 조금 무섭긴 했지만, 다행히도 찌작은 겁이 많아서, 내 모습만 보면 후다닥하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찌작과 나의 기묘한 동거 생활은 시작되었다.              


작은 도마뱀 찌작, 처음에는 징그러웠지만 나중에는 너무 귀여웠다(한국에 데려가고 싶었다)


이날은 인도네시아 현지민들이 가나안 농군학교 안으로 놀러왔다. 아무래도 주변이 워낙 허허벌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잘 꾸며진 농군학교 안으로 구경을 하러 온 것이었다. 여학생 두 명과 남학생 한 명이었는데, 한국 나이로는 고3이라고 했다. 이들은 찌솔록면에서 4시간 떨어진 자카르타에서 사는데, 불과 1주일 후면 시험을 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수업이 없어서 놀러왔다고 했다. 한국 같았으면 한참 공부하고 있을 시간일 텐데, 정말이지 놀랍게도 이 나라 학생들은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부모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등짝 스매싱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겠지만, 태평한 인니들은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과 관련도 없는 내가 오히려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느슨하고 욕심 없는 성격을 알고 나서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이들에게 대학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하루 밥 세끼 먹고, 그때그때를 즐길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인니들에게 한국 사람처럼 욕심과 야망을 바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욕심과 야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 받기 마련이었다.


참 신기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이들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다. 선풍기라고는 없는 40도 넘는 교실에서 공부해도 불만불평하는 아이도 한 명 없었다. 반찬이라고는 없이 쌀밥만 먹으면서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수능결과가 나오던 날, 펑펑 울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는 밝은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너무 오래 책상에 앉아 있어서 진통제를 먹어야했고, 그때 생긴 섬유근통이라는 질병 때문에 나는 지금도 허리에 통증을 달고 산다. 


명문대학교를 가고 싶어서 재수까지 했으나, 나는 실패했다. 그 미련 때문에 명문대학교의 지방 캠퍼스에 입학했다. 그렇게나마 학벌이라는 간판의 끄트머리에 매달리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내 인생이었고, 아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의 학창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수능 1주일 전에 놀러다니는 인니들의 모습은 세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밤 9시까지 야간자율학습. 12시까지 학원. 그것도 모자라서 새벽 3시까지 독서실.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경쟁을 하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한국의 삶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수능 1주일 전에도 태평하게 놀러다니며 웃고 있는 인니들의 삶이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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