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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Aug 06. 2023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아니, 고려시대에는 저런 의자가 있을 수가 없어요.”

휴일,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이겨내고 나온 자리.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저 분은 전생에 고려인이었던 게 틀림없다. 고려 때 쓰인 의자라니, 자료에도 없는 사실을 위풍당당하게 외치는걸 보면, 전생의 기억을 끌고오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복두(사극을 보면 신하들이 양옆으로 날개가 뻗친 관모를 쓰고 나오는데 그걸 복두라고 한단다, 나도 이 일하면서 처음 들어봤다)가 저렇지 않아요. 날개가 축 처져있는 형태로 그려야지.”

네네- 눈을 최대한 가늘게 뜨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

“아니, 측우기에 열팽창 기능이 어디 있어요? 일부러 지어낸 거 아니야? 너무 억지스러운데“

”아, 국립기상박물관 소장 유물 학예 자료에서 찾아보고 정리했습니다.“

”아니야- 저건 좀 억지인 것 같아. 그냥 삭제해요.“

그냥, 그냥이라뇨. 정말 그냥스러운 워딩 한마디에 부아가 치민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저자 회의. 교과서 기획을 업으로 삼은 편집진은 마실을 나와 날씨를 논하듯 툭툭 내뱉는 저자들의 불평 불만에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다. 매일을 씨름하며 완성한 콘텐츠에 한 달만에 나타나서는 감나라, 배나라 하는 광경이라니.





축축한 공기가 폐부로 들어 차 숨이 턱- 막히는 기분. 드디어 진정한 여름인가 싶다. 여름이라면 질색 팔색하는 터라 더없이 우울해진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와 앉았다. 칙- 찬 맥주를 따고 튼 영상. 박하경 여행기.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고궁을 거니는 그. 부러웠다. 운명의 장난인지 박하경이 국립기상박물관을 들어서는 그 장면에서는 그래, 결심했다. 역사에 진절머리가 날만큼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휴일에 또 박물관에 가보겠다며 일정을 꼽아 보는 내가 스스로도 참 어이가 없었다. 




걷고, 먹고, 멍 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국립기상박물관엘 갔다. 박하경 여행기의 그 장면처럼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어느날. 기필코 측우기의 과학적 원리를 명징하게 밝혀내어 그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그렇게 결코 가볍지는 않은 마음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마음을 안고 실내에 들어섰다. 어두운 조명, 그 안에서 조용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몇 백년 전 누군가의 사물들. 고즈넉한 광경에 익숙한 고향을 찾은듯 이내 모든 신경이 차분해진다. 

조선의 왕은 하늘의 대리자로 여겨졌다. 그런 그가 하늘을 읽어내지 못하면 곧 그의 천명은 모두에게 의심받았다. 하늘이 그를 버렸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 때문에 조선의 왕들은 악착같이 하늘의 현상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오늘날 추앙에 가까운 명성을 얻고 있는 세종이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세종은 백성에게는 몰라도, 신하들에게는 악덕 상사로 두고두고 회자되었으리라. 매일 밤을 지새우며 왕이 내린 과제를 끝내야만 하였던 그들이 우리네 직장인과 닮아있을듯 해서 퍽 안쓰럽다. 그래도 그대들의 노고 덕에 오늘날 내가 천지인 키보드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므로 너무 억울해 하진 마시길.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했던가. 첫째 아들 문종 역시도 학구열이라면 세종 못지않았다. 측우기는 바로 그가 만든 발명품이었다. 찾았다. 열팽창. 대나무처럼 생긴 축우기는 그 마디 마디에 따라 3단으로 분리, 조립할 수 있었다. 그런 구조가 측우기를 변덕스런 한반도의 계절 앞에서도 끄떡 없게 만들었다는 것.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더워도 측우기의 몸통 면적은 변하지 않았다. 지조있는 면적 덕에 비의 양은 언제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측우기의 등장으로 당시 백성은 풍년과 흉년을 예측할 수 있었을 테고. 조금은 마음 놓고 일상을 보냈겠지.

철저히 증거 자료를 모은 뒤 미련없이 박물관을 나섰다. 피스- 마음의 평화를 찾은 채.




이렇게 돌아가기엔 너무도 아쉬웠다. 바로 밖에는 경희궁 터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어젖혀 있었다. 비가 그친 뒤 한껏 센치해진 고궁의 풍광이라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나간 비의 향취를 좇으며 한걸음 한걸음 발을 디뎠다. 어디까지가 그 때 그대로의 터이고, 어디까지가 오늘날 새로 덧붙여 지은 장소일까. 색이 바라 희미해진 단청 앞을 지날 새면, 이 단청 밑을 지났던 빛바란 역사 속 그는 누구일까 덧없는 생각에 빠진다. 경희궁, 참 쓸쓸한 곳이다. 광해군의 한이 서린 곳. 그는 이 단청을 지났을까. 그 때 그는 슬펐을까, 기뻤을까, 아니면 노여워 하고 있었을까. 

숨막히는 한여름의 더위 속에 시작된 7년의 전쟁. 난생 처음 보는 중무장한 이웃 나라의 군대들 틈 속에서 수만 수천의 피가 난무했다. 서울을 버린 왕이 북쪽으로 피난을 가 생존도 알 수 없다는 소식에 백성은 동요했다. 그런 백성에게 조정의 건재함을 보여 주기 위해 한 나라의 세자였던 그는 노숙도 마다하며 한반도의 북쪽 땅을 누볐다. 날이 갈수록 백성의 인기를 얻는 그를 아버지 선조는 질투했다. 후궁의 소생,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던 미천한 아들이 전쟁을 기회삼아 자신의 왕좌를 차지할 날을 앞서 걱정하며, 그렇게 견고한 미움으로 마음의 벽을 쌓았다. 

이윽고 지난한 시간이 흘러 전쟁은 끝났지만, 광해군은 한숨을 돌릴 새가 없었다. 새 장가를 들어 얻은 적통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리며.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 가시방석과 같은 하루 하루를 견디고 견뎌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에는 더 한 불행이 그를 덮쳤다. 아버지가 남긴 미움의 유산은 그의 칼을 이복동생에게 향하게 했다. 결국 새 어머니를 궁에 가두고 이복 동생을 죽인 죄로 그는 어렵게 물려받은 왕좌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남쪽 끝의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 그는 조선이 두 차례나 전쟁을 다시 겪는 광경을 목도한 뒤로도 한참이 흐른 뒤에야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의 주검을 지킨 건 시종,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런 광해군의 꿈이 서린 곳이 경희궁이었다. 왕위에서 쫓겨남과 동시에 그의 찬란한 희망 속에서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졌다. 모진 일생을 모두 거쳐 맞이하게된 최후의 순간, 그가 지었을 표정과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생을 쭉 돌이켜 톺아보다 보니, 오늘날 내가 겪고 있는 이 수모와 고통이 참으로 하찮게 느껴졌다.  


아- 배고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넓은 궁지를 돌고 또 돌았으니 그럴 수밖에. 인문학적 사유의 끝은 결국 본능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긴 곳은 쾌적한 문명 속 패스트 푸드 가게. 헛헛한 배를 채우다 보니, 덧없게도 헛헛한 마음도 이내 채워진다. 결국 이렇기에 사는 것이다. 이런 순간 순간들의 행복을 위해. 오늘날의 나는 조선 왕도 누리지 못한 불고기 패티를 누리고 있구나,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도 잠깐 한다.

그렇게 지금의 여름, 그 모든 순간들이 어딘가에는 영원히 박제되고 있다. 내가 몇 백 년 전 그들의 순간 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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