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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의 역기능

성해나, 혼모노 단편집 중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

by 초희
언니 쟤네 순수하게 김곤 좋아해서 모인 애들 아니에요. 총대도 그렇고 저기 있는 애들 절반은 겉으로는 김곤 빨면서 속으론 엄청 질투하거든요. 요즘 아카데미 출신 중에 김곤만큼 잘된 감독 없으니까. 연출부라도 한번 들어가고 싶어서 클럽 만들고 사람 모드고 사바사바하고 그러는 거라고요.
오영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요...... 쟤네는 우리랑 다르다고요.
(중략)
오영은 '우리'의 사랑은 '저들'의 사랑보다 순도 높다고 했다.
-32쪽
다른 애들은 몰라도 우리는 믿잖아요. 그쵸?
나 역시 김곤을 순수하게 믿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었다. 대중의 규탄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떳떳하게 공유하고 싶었고, 내 순수한 사랑을 죄의식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34쪽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라는 단편 소설집 속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라는 소설 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순결하다는 믿음, 저들과는 다르다는 선긋기. 저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치부해버리는 오만.

이 모든 비뚤어진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결국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요?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그 누군가가 갖고 있는 일면 만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믿어버리고 싶다는 약한 마음의 표현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허상을 만들어 놓고 매달려야 안심하며 지낼 수 있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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