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의 첫날, 대학 본부는 설명회를 열었다. 이른바 구조조정이라 불리는 계획안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직후였다. 내년부터 입학 인원을 선발할 때 학과 단위가 아닌 단과 대학 단위로 모집하겠다는 게 그 요지였다. 별안간 소식을 접한 학생들이 강당을 빼곡하게 채웠고, 연단에 오른 총장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는 그 순간 총장이 무심코 뱉은 말을 기억한다. "생각보다 많이 모였네요?" 이윽고 예정된 순서가 마무리되자 한 학생이 질문했다. 전체 투표에 부쳐 과반이 반대하면 계획안을 철회할 의사가 있는지. 그러자 총장이 답했다. "큰 틀은 그대로 갑니다. 세부적인 부분은 합의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논의 일정이 제시된 가운데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해 봄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몇몇 학생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총장이 내세운 '큰 틀'을 바꾸고자 도전했다. 나도 거기 참여해 작은 힘을 보탰다. 정문과 후문 등지에 부스를 펼쳐 서명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테이프와 가위 몇 쌍을 챙겨 캠퍼스 이곳저곳 대자보를 붙이고 다녔다. 또한 강의실을 방문해 난생처음 수강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쥔 손을 벌벌 떨면서. 그토록 움츠러든 마음을 다잡으며 바쁘게 활동을 이어 갔다. 그래서인지 그 무렵 쓴 일기에는 ‘폭풍 같은 하루’라는 표현이 흔했다. 이제 막 새내기티를 벗은 나에게는 모든 상황이 생경했으므로. 날마다 하는 경험을 복기할 겨를조차 없었기에, 결의에 차는 대신 불안과 걱정을 한가득 안은 채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학교 이름이 오르내렸다. 전 총장의 비리 혐의까지 밝혀져 본관 건물로 압수수색 차량이 출입했다. 그런데 낯익은 파란 상자가 눈앞을 오가는 것에 비해 개강을 맞은 캠퍼스는 예년처럼 활기를 띄었다. 나는 그 간극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걸까. 다들 너끈히 제 일상을 살아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광장에서 선전물을 뿌리고 있으면 돌아오는 반응이 다양했다. 모른 척 피하거나 이미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묻거나. 지지와 격려를 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크게 남는 건 차가운 무심함이었다. 가끔은 내가 선 자리가 섬처럼 느껴졌다. 전공 수업과 기자회견, 동아리 모임과 긴급 토론회. 동떨어진 두 세계를 번갈아 건너고 있었다.
그간 기대한 상식들은 연거푸 무너졌다.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를 불러 말했다. 학교를 설득하려면 일단 자신부터 설득해 보라고. 술기운이 올랐는지 내가 바락바락 대들자 선배도 어느새 같이 언성을 높였다. 주변의 중재로 일단락되었지만, 나는 그게 참 억울하고 분했다. 집으로 가는 길, 애꿎은 가로수만 발로 차다 눈물을 터뜨렸다. 대학의 의미는 각자 정의하기 나름이었다. 아는 만큼 행동한다는 것도 그리 당연하지 않았다. 종종 과방에서는 학교에 대한 비판이 안줏거리처럼 이야기되었는데, 정작 실천에 옮기는 모습은 드물어 그 무게가 더없이 가벼워 보였다. 무언가를 바꾸기란 이렇게 지치는 일이었나. 나는 조금 더 단단한 데 의지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꼭 모래성처럼 쌓여 갔다.
그 시절은 오래도록 앙금으로 굳었다. 특히 하루는 한 후배가 던진 물음이 줄곧 외면한 마음을 들추었다. "그런다고 뭐가 바뀌나요." 당시에 나는 마치 모욕을 당한 듯 받아쳤다. "당위의 문제야. 마땅히 바뀌어야 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결과와 상관없이 그게 떳떳한 거라고. 하지만 짐작하기를, 그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사실, 나부터 너무 겁이 났다. 끝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까 봐, 뒤늦게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할까 봐. 깊이 박힌 냉소는 잊을 만하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내가 아팠던 건 꿈쩍도 않는 대학 본부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좀먹는 모진 의심 때문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낙관할 수 있을까. 매일 밤, 나의 가슴에 과녁을 만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바람이 있다면 계속해 나갈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자꾸만 지는 기분이 드는 게 싫었고, 그렇다고 아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한마디가 구원처럼 떠올랐다. "기사 한 줄이 바뀐단다." 앞으로 모든 소식 앞에 기록될 짧은 문장이,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싸우는 이들의 존재가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나중에는 먼저와 같은 수모를 겪지 않을 것이므로. "또한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했단다." 어쩌면 오락실 게임과도 비슷해 보였다. 동전을 다시 넣으면 캐릭터는 직전에 쓰러진 데서 일어나 기어이 한걸음을 나아갔다. 마찬가지로 다음 차례의 누군가는 훨씬 나은 위치에서 내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의 통증을 거듭한 끝에 그 결실을 거두게 되지 않을까.
폭풍 같은 한 학기가 끝난 뒤, 총장이 내세운 '큰 틀'은 반쯤 후퇴한 채로 통과되었다. 그제야 나는 이번 계획안이 등장한 내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어떤 사건이든 유구한 흐름 위에 놓인다는 걸 실감했다. 나의 오늘도 결국 과거에 빚질 수밖에. 한편, 함께 애쓰던 동료들 중에서는 벌써 몇 번의 구조조정을 겪어 온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계속할 수 있었을까. 햇수로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을 새삼스레 적는 까닭은 다름없다. 도대체 뭐가 바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회의할 때가 많다. 기시감 가득한 나날을 보내기 일쑤고,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무력하게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프게 씨앗을 뿌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