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에게
폴라리스엔 총 일곱 명의 멤버가 있고, 지금은 여섯 명이 활동하고 있다. 다들 인턴과 학업, 취업준비로 현생에 허덕이면서도 한 사람도 한 번을 펑크 내는 일 없이 삼십 주가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잘 버텨냈다. 그 덕에 한 주에 한 주제씩, 소처럼 꾸준히 폴라리스를 찍어 내는 일은 꽤 탄탄한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혼자서 이 정도 분량의 레터를 매주 발행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레터를 개선하고, 전략을 짜고, 시장에 밀어 넣는 일 -우린 이런 일을 뭉뚱그려 '기획'이라고 부른다- 관련해서는 진척이 별로 없어 늘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오너십을 가지고 있고, 또 마땅히 가져야 함에도 그러지 지 못해 추진력이 없었다. 그 점이 늘 멤버들에게 미안했다.
방학은 조바심 날 정도로 소중한 기회다. 학부 졸업과 대학원 입학 사이 마지막 방학이지만 괜히 어디 가서 며칠 놀 생각하지 말고, 이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 이왕이면 지금처럼 150명에게 레터를 보내는 것보다 500명, 600명에게 보내는 게 더 할 맛 날 테니까.
1. 디자인 변경
30개 호 가량 발행하며 쓰던 디자인은 폴라리스를 처음 시작할 때 두 시간 만에 만들어 낸 디자인이어서, 다른 레터들에 비해 디자인이 아주아주 조악했다. 눈이 편한 크림색을 중심으로 하고, 글과 글 사이의 구분, 인용문과 큐레이션 사이의 구분을 조금 더 선명히 할 수 있도록 네이비색과 회색을 함께 썼다. 제목에 들어가는 영문 폰트는 이곳에서 무료로 받아서 PPT로 작업했다. (폰트가 무척 다양해서 간단한 로고 정도를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다만 비영리/개인 사용을 허용하는지 여부는 폰트마다 달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드디어 디자인을 변경해 홀가분했지만, 지난 가을 학기 중 기획자 이물님이 만들어 주신 디자인 초안과 충분히 절충하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2. 얼룩소 진출
지난여름에 외부에서 우리보다 마케팅에 대해 훨씬 빠삭하게 알고 계신 분께 조언과 크리틱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뉴스레터가 바이럴을 일으키기에는 폐쇄적인 플랫폼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좋은 글을 소개하고 널리 읽히는 데 기여하는 게 목적'인데 뉴스레터를 수단으로 고른 것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100% 설득되는 지적이었다. 뉴스레터는 지금은 완독 불가능한 수준으로 기니까 가능한 분량을 줄이고, 다른 채널에서 진출해 길게 쓰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 사이 얼룩소란 플랫폼이 등장, 이곳에 우리의 독자층이 많을 것 같아 얼룩소로 진출했다. 다행히 올리는 글에 반응이 와서 짜릿했다.
다만 얼룩소는 브런치에 비하면 아직은 이용자가 적고,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성격의 플랫폼이 될지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사용하며 느낀 점을 간략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조금 더 길고 전문적인 평가는 어거스트 뉴스레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얼룩소의 댓글 시스템은 명백히 토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라리스가 올린 게시글에도 종종 댓글이 달리곤 한다. 글을 읽고 반응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댓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지금처럼 포퓰리즘 정책이 판치면 언제든 포퓰리즘으로 망한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렸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재부와 한은 등에 있는 경제 관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닌 데다, 전형적인 미끄러운 경사면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 정작 우린 어디까지가 포퓰리즘이고, 또 어디까지가 보편적 복지 정책인지 구분하는 것이 섬세한 기준이 필요로 한 작업임을 주된 메시지로 담았는데, 이렇게 조선일보식으로 논지를 펼치면 토론이 되지 않는다. 저런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에 좋아요가 눌리면 씁쓸하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맞을지, 공손히 조심스럽게 토론에 임하는 게 맞을지 헷갈린다. (엊그제 서울역 앞에서 본 '미군 철수 반대: 과거에는 베트남 현재는 아프간, 다음엔 한국?'이란 플랑이 떠올랐다)
2. 사용자층: 얼룩소는 예상했던 것보다 사용자의 연령대가 높고(브런치가 2030 사용자 비중이 높은 것과 비교된다), 특히 그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꽤 동질적인 이들이라고 느꼈다. 즉 4050대 남성이 가장 주된 화자라는 느낌. 사용자 층을 다양화하는 것(특히 2030 세대까지 사용자 층을 확대하는 것)이 얼룩소의 주된 과제이지 않을까 한다.
3. 카테고리: '공적인 결정', '징후적 사건' 등 카테고리를 나눠놓고 그 카테고리 별로 글이 노출되는 구조인데, 왜 키워드 태그 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주제를 올려야 하는지 의문. 비슷한 성격, 비슷한 주제의 글이 이웃하여 노출되는 식으로 관리되어야 할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고라가 형성되지 않는 느낌.
3. 폴라리스 라이브러리 구축
매주 한 주제에 20개가량의 양질의 텍스트를 에디터들이 들고 오는데, 이 중 다섯 개만 올리는 게 못내 아쉬웠다. 무엇보다 구글과 포털에 올라오는 100개의 똑같은 기사 속에서 좋은 기사를 발굴해내는 수고로움 없이 바로 좋은 기사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관련해 얼마 전 얼룩소가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인턴 모집 공고를 올리며 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포털 중심의 뉴스 공급 구조에서는 클릭수 경쟁 때문에 ‘좋은 뉴스’가 눈에 띄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 편하도록 직접 좋은 뉴스를 찾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얼룩소가 묘사한 것과 정확히 같은 미션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다. 폴라리스 라이브러리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 언론의 빛나는 성취를 수집합니다.' 이 일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구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일 없이 밀어붙였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워낙 노동집약적 이서 그래야만 1월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거의 다 되어 간다. 설 연휴까지는 마무리할 참이다. 그래야 2월에는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듯.
4. 저작권 관련 사과문 작성
폴라리스를 하며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순간. 조심스러워서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사과문 전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월에는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자 한다. 2월 안에 확답을 내릴 필요는 없지만, 구독자가 충분히 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모두가 가진 직관, 즉 '길고 지루한 정치, 경제, 사회, 복지와 관련된 뉴스를 꾸준히 읽는 사람은 이제 없다'는 진술을 확인하고 끝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믿음 위에 우리는 레터를 쓰고 있는데, 제발 제발 길고 진지하고 무거운 시사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이 남아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wishful thinking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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