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원하는 나와 본인다운 나 사이에서의 갈등
친척의 병문안을 가기 위하여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인 아침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동생도 같이 가기로 한 병문안이지만 건강이 안 좋아져서 같이 못 가게 되었다. 동생을 제외한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가 문득 저런 말을 하셨다. 동생은 이번 연도에 입사했다. 이전에 인턴을 했던 기관에서 일까지 하게 되었다. 전공과는 무관했지만 시험공부를 해서 결국은 그 기관에서 직원 명함을 달며 일을 하고 있다. 동생이 그 기관으로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랬다. 바로 그 무엇도 아닌 수입 때문이다. 둘이서 산책을 하게 된 어느 날 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학교 졸업하고 나면 뒤에 수입이 없어서 걱정이네.." 저 말이 원하지도 않은 그 기관으로 들어간 목적이 되었다. 그래도 일이 마음에 든다면 기분 좋게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일을 하게 돼서 좋다는 말보다 기관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훨씬 많이 했다. 일이 좋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서로 일을 하며 살다 보니 통화를 하는 날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주된 주제가 되었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동생의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 부모님이 말한 내용들은 사뭇 달랐다.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래?"
"회사 사람들도 각각의 생각이 있는 법이고 직장 안에서의 갈등은 피해야 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하셨던 말이다. 저 말도 맞는 말이다. 나도 일을 하며 듣는 말 중엔 회사가 주는 월급보다 합당하게 혹은 더 많이 일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단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동생은 함부로 그런 갈등을 일으킬만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저 젊은 나이에 모자란 직장생활 경험 때문에 그런 불만을 갖고 산다는 것으로 알고 계신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 세대 간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목과 같이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난 판단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직장과 나 사이의 타협점은 분명히 있다. 직장의 목적과 상급자의 지시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며 본인다움은 점차 없어져 간다면 그건 생각해 볼 여지가 분명 있다. 나 다움을 발현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일도 하면서 나 다운 삶에 대한 범위를 점차 넓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은 일대로 하되 글을 쓰기 위한 삶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직장 생활에 있어 회의감이 든 적은 누구에게나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적이 없다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매일 일을 해내야 하는 하루하루는 분명 힘이 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 본인 다움마저 잃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이런 글을 적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