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되어가는 건가

사회에 나온 뒤에 마주한 인간관계의 단면

by 이상인

우리 가족은 모두 1월에 생일이 있다. 부모님 생신이 앞에 있고 나와 내 쌍둥이 동생의 생일은 뒤에 있다.

그래서 우린 한 번에 몰아서 생일을 기념한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 생신인 날짜 당일엔 각각 선물을 챙겨 드린다. 어제는 나와 쌍둥이 동생의 생일이었다. 서로 축하한단 말로 끝나긴 했지만 가족끼리 생일을 챙길 수 있다는 게 어딜까 싶기도 했다. 또한 알고 지냈던 지인들, 몇 년간 연락을 못했던 친구들 까지 내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소소한 선물과 안부인사를 건네주었다. 특히 몇 년간 연락을 못헀지만 친하게 잘 지냈었던 친구와 전화를 할 땐 너무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미안했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다.


일단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이 내심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와 가깝게 지내거나 혹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 알고는 있어서 축하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람등 본인만의 기준에 따라 사람이 나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의 그런 모습을 봤었듯 나 또한 자연스레 이렇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단 생각에 글을 적었다.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이 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나이 들면 친구 만나는 게 쉽지 않아. 그러니까 젊을 때 친구 잘 만나야 돼..."


그런 게 어딨냐며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된다. 누군가는 저 말이 생뚱맞은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날을 잡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돼버렸다.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땐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것 마저도 일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도 먼저 내게 연락과 축하를 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느꼈던 어제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본인의 경우엔 어떤지, 나에게 먼저 축하를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는지, 어쩌면 내가 먼저 축하를 해 줄 수는 없을지 잠깐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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