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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13. 2019

가오슝에서 먹은 것들

대만, '19.06.07(금) ~ '19.06.26(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조그마한 섬나라. 그나마도 땅덩어리의 7할을 덮고 있는, 때로는 3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빽빽하게 심겨진 콩나물 시루처럼 살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용' 이라는 칭호를 꿰차기도 했던 네 국가 중 하나인, 작지만 약하지 않은 나라. 강산이 세 순배 바뀌는 시간 만큼의 단절이 이곳을 꽤나 먼 나라로 느껴지게끔 하지만 여튼 중화민국은 그런 나라다.


일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스치듯 떠나온 것이 아쉬웠던지라 조금은 넉넉하게 시간도 들여서. 대만의 남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오슝 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는,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 기차의 꽁무니를 좇아 타이페이의 활주로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가오슝


대만 제 2의 도시이다. 아니 그랬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인구마저 타이중에게 어깨섶을 내어주었다. 그런 덕분에 지금은 '대만 남부 최대의 도시'라는 조금은 어정쩡한 자리에 안착하였다. 물론 그런 현재가 가오슝이 지나온 자취를 지워내지는 않을 것이다. '타이난'이라고 하는 도시에서부터 시작된 이곳의 역사가 지금까지 오는 발판에 가오슝이 있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을테니 말이다.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겁다. 그리고 말해 무엇 하랴, 입이 있어 즐거운 것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라면 대만에서 당신의 입은 쉴 새 없는 격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가오슝에서 먹고 즐긴 것들이다.



1. 리우허 야시장(六合觀光夜市)


주소 : Liuhe 2nd Road, Xinxing District, Kaohsiung City, 대만 800

지도 : https://goo.gl/maps/89YrujVWf2PWFzVf8



야시장은 대만을 떠올리는 가장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대만 어디를 가더라도, 어둠이 내린 도시의 좁은 거리는 온갖 좌판들이 만드는 부산함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저 스쳐갈 뿐인 뜨내기의 입장에서 야시장만큼 빠르고 편리하게 이곳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대만의 이명과도 같이 여겨지는 '포모사', 아름답다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이다. 그리고 가오슝에는 그 대만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을 가진 지하철역이 있다. 그 뜻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함인지 꽤나 정성들여 단장을 하고 있는데, 그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 중 하나로 출처 모를 순위표에 종종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Formosa Boulevard', 한국어로는 '미려도'이니, 이름만큼의 값은 하는 곳이다.



리우허 야시장은 그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미려도역의 1번 출구를 빠져나와 조금의 걸음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관광객에게 조금 더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입지로 말미암아 더 자주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현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루이펑 야시장을 더 자주 찾는다고 한다. 궁금하여 찾아가봤으나.. 성탄절 명동의 풍경에서 인간 군상의 생동을 느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도전해보도록 하자.


장담컨데 도떼기시장이라는 말의 유래는 대만이다



여튼 어느 야시장이 그렇겠지만 먹고 즐길 것들이 다양하다. 2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음료 한 잔 마시는 것은 일도 아니니 가랑비에 옷은 젖을지언정 당신의 지갑이 젖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부담없음이 어디 마실거리에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우리나라에 국밥이 있다면 대만에는 우육면이 있다. '가성비'라는 전장에 감히 일기당천의 용장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우육면이 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이 없을 것인데, 비싼 가격표가 붙은 것을 찾기가 더 힘들다. 이 녀석만 찾아다녀도 여행 중에 주린 배를 움켜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담컨데 '이 돈이면 국밥 한 그릇 뚝딱'이라는 문장은 '우육면 한 그릇 뚝딱'으로 대체될 날이 머지 않았다.



물론 모든 도전의 성취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카레향이 알싸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위의 닭튀김이다. 그리고 나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즐겁다.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면 어떤가. 그마저도 즐거움의 일부이고 여행이기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이다. 밤이 심심하다면 야시장을 찾아보도록 하자. 대만의 밤은 분명 재미있다.



2. 왕여사의 아침(王媽媽早餐店)


주소 : No. 50號, Lane 159, Fuxingyi Road, Sanmin District, Kaohsiung City, 대만 807

지도 : https://goo.gl/maps/A9bDPbydJ7zKZsFz8

시간 : 06:00 ~ 14:00 (일요일 휴무, 아침식사 식당이라 일찍 종료)



부지런히 아침을 여는 이들에게 대만은 상당히 친절한 곳임에 틀림없다. 가격은 말해 무엇할 것이며, 단조로운 일상에 소소한 선택의 분기를 가져다 줄 다양한 먹을거리로 무장한 식당들이 대만에는 즐비하다.



가오슝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 역시 그런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계란과 찹쌀에 갖은 재료를 넣어 부친 전을 먹을 수 있다. '천하일미' 혹은 '미미'같은 수식어를 붙여줄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무척이나 애용했다.


찰기가 더해진 메밀전병과도 같은 이 녀석은 한국에서 수백번도 더 먹어봤을 법 한 익숙한 맛을 가졌다. 그런 덕분에 일찌감치 조국을 그리워하는 나의 혓바닥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오슝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익숙한 여행지가 된다면 나는 이곳을 다시금 찾을 예정이다. 기본찬으로 김치를 내어주실 생각은 없냐는 생각을 억지로 밀어넣는다고 꽤나 고생을 했는데, 그때는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둘은 분명 훌륭한 영혼의 단짝이 될 수 있다. 마치, 짧게나마 피오렌티나 전성기의 중심에 있던 루카 토니와 아드리안 무투와 같이 말이다.



결코 양이 적지 않은 한 장의 전과 토스트, 거기에 홍차 한 잔을 더해 90원 남짓이니 한국 돈으로 3,5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의 국밥은 이곳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3. 단단버거


주소 / 지도 / 시간 : 체인점이므로 구글 지도에서 'Dan Dan Hamburger' 검색



흰 수염의 할아버지 만큼이나 대만 사람들에게는 길게 뺀 노란 부리의 새 한마리가 익숙하다. 대만에서 느끼는 어머니의 손길, 단단버거 되시겠다.


햄버거를 음차한 '한보'라는 단어가 강렬한 붉은 빛을 발산하며 노란 바탕과 대비를 이루는 간판 덕분에 어디에서든 눈에 띈다. 지점도 워낙에 많다. 찾는 수고로움이 크지 않으니 덤이라면 덤.



한화로 4천원이 넘어가는 구성을 찾기가 힘들다. 이곳에서도 우리의 국밥 선생님은 연전연패를 거듭하시는 중이다.



무조건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찾았을리가 없다. 여행 전에는 이런 곳의 존재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다만 발길 닿는 곳 마다 없는 법이 없고 한국 사람들의 평 역시 없는 곳이 없었다.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완벽하게 대만에서 느끼는 어머니의 손길이다. 맛에 대한 평은 이것 하나만으로 모자람과 넘침이 없이 갈음할 수 있다.


다만 같이 내어준 멀건 국물에 고깃조각이 떠다니는, 저 국도 스프도 아닌 무언가가 인상적이다. 익숙한 맛과 향이 아니라서 취향이 갈릴 만 하다. 계피향이 그득한 사이로 한약재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꽤나 걸쭉하게 끓여낸 덕분에 어설프게나마 밥을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약간은 불량스러운 맛이 그리워 햄버거에 의탁하였는데 닭고기 고명이 얹어진 따뜻한 한약 한 사발이라니, 어딘지 모르게 조합이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하다. 감자 구경을 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 정도의 아쉬움은 영수증에 찍힌 숫자 한 번 보는 것으로 달랠 수 있다. 한약 체험을 하고싶지 않아도 상관 없다. 햄버거 두개 먹으면 되니깐. 그렇게 하더라도 국밥은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



4. 百風鮮味煮


주소 : No. 2號, Lane 325, Zhongshanyi Road, Sanmin District, Kaohsiung City, 대만 807

지도 : https://goo.gl/maps/XyAbg3Mv2KSqu5w86

시간 : 11:00 ~ 20:00 (무휴)



백 가지의 아름다운 맛을 만드는 곳.


이렇게 기품있는 이름을 가진 어묵집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여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터무니 없지는 않다.


사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섬나라 아니겠는가. 어묵을 즐길 것이라는 추측은 지극히 타당하고, 실제로 정말 다양한 종류의 어묵을 만들고 즐기는 나라가 대만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종류의 맛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충분히 매력있다.



꽤나 자주 하는 말이지만, 어떤 음식이든 가지는 맛의 한계라는게 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하다면 상상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사족이 길어서 어떤 반전이 있으면 싶겠지만 아쉽게 그런 것은 없다. 사실 그 덕분에 이곳을 누군가에게 권하는 것에 부담이 없다. 정확히 우리가 아는 어묵의 맛이다. 그렇기에 내적 갈등이나 어떤 결단 없이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조금 더 다양한 종류의 어묵을 가계 형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거기에다가 가오슝역의 바로 앞에 위치해있으니 입지 조건도 나쁘지 않다.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이 가능하다. 굳이 시간내어 찾을 필요는 없지만 길을 걷다가 이곳의 간판이 보이는데 찾지 않을 이유는 또 없다.



나는 타이난으로 떠나는 날의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였다. 가오슝에 살고 있는 대만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지금도 여기에서 먹은, 어찌 보면 별 거 없는 어묵이 가끔은 생각이 난다.


당신의 집나간 입맛에 지독한 향수병이 겹치었다면 그때는 이곳을 찾아보자. 그래도 밥은 굶을 수는 없으니깐.



5. Simtree Coffee


주소 : No. 73號, Zhongzheng 3rd Road, Xinxing District, Kaohsiung City, 대만 800

지도 : https://goo.gl/maps/ioXWvM84Cy47KJsLA

시간 : 07:30 ~ 22:00 (무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이름을 가진 게임의 DLC가 아닐까 싶은 간판을 하고 있는 이곳은 나름의 유명세가 꽤나 있는 곳이다. 가오슝의 'Sim('s?) Tree Coffee'



커피가 맛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카페를 찾는 유인이 그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른 생활 교과서에서부터 꾸준히 배워왔다. 적어도 그 기회를 앗아가서는 안되기에 별 고민 없이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을 할애하게 되었다.


사족이 길었다.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구구절절 변을 늘어놓으며 손가락을 놀리고 있냐면, 예쁘기 때문이다.


예쁜 것은 적어도 예쁘기 때문에 그 쓰임을 다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 취향에 이 장소는 예쁜 것 하나만으로도 그 쓰임을 충분히 하는 곳이었다.



이래나 저래나 커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평을 할 생각은 없지만 특별하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곳은 예쁘다.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며 기계 문명의 공존을 시도하는 어느 과학자가 창조한 것 같은 이 공간을 누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 공간은 당신에게 휴식을 선물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참 쉽게 끝맺음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왜냐하면 대만의 음식은 어딜가나 맛있고, 어딜가나 저렴하며, 어딜가나 행복에 겨워 식당 문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오슝은 그런 곳이다. 아니 대만 어디를 가도 그러하다.






대만 음식은 맛있고, 이 가방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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