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Jul 15. 2019

타이난에서 먹은 것들

대만, '19.06.07(금) ~ '19.06.26(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조그마한 섬나라. 그나마도 땅덩어리의 7할을 덮고 있는, 때로는 3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빽빽하게 심겨진 콩나물 시루처럼 살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용' 이라는 칭호를 꿰차기도 했던 네 국가 중 하나인, 작지만 약하지 않은 나라. 강산이 세 순배 바뀌는 시간 만큼의 단절이 이곳을 꽤나 먼 나라로 느껴지게끔 하지만 여튼 중화민국은 그런 나라다.


일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스치듯 떠나온 것이 아쉬웠던지라 조금은 넉넉하게 시간도 들여서. 대만의 남쪽 하늘을 가로질러 가오슝 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는,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바퀴를 구른 기차의 꽁무니를 좇아 타이페이의 활주로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타이난


대양 진출이라는 야망을 끈질기게 경주한 그에게 사람들은 '항해왕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포르투갈 왕국의 왕자이자 비제우의 대공이었던 '인판테 동 엔리케'. 1415년, 포르투갈 왕국은 지브롤터 해협 건너의 세우타를 점령하는 것으로 기나긴 개척시대의 서막을 알렸으며, 엔리케 왕자는 곧 그곳의 총독이 되어 자신의 오랜 열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렇게 순풍에 돛을 단 듯이 흐른 200년 남짓한 시간의 자취, 우리는 그것을 대항해시대라 부르며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더 멀리, 더 큰 대륙을 향한 호기심과 노력은 끊임이 없었다. 선루에 올라 바라본 수평선의 끝은 쉬지 않고 동쪽으로 향하다. 그리고 1590년, 한 무리의 선단이 동양의 어느 조그마한 섬에 닻을 내렸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듯 하다. 그곳은 곧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을 가진 '일랴 포르모사'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지금은 중화민국의 보금자리가 된 타이완섬이 세계 무대에 존재를 알리게 된 바로 그 순간이다.



그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타이완섬은 점령과 수복의 역사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 대서사의 서막을 알린 곳이 다름 아닌 바로 이곳, 타이완 남부의 거점 도시이며 대만의 6대 직할시 중 하나인 타이난이다.


1624년 네덜란드의 상인들이 이곳에 상륙하여 요새를 쌓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었으니, 타이난은 이 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그리고 그 유서가 깊은 만큼이나 방대한 역사의 흔적을 면면에 품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분명 충분치 않다. 가진 매력이 그 뿐이었다면 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시간에 꽤나 세련되게 머무르는 이곳은, 사실 엄청나게 아름답다. 발이 닿고 시선이 가는 어느 곳이든 액자 화폭에 담기는 순간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 도시가 무척 좋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곳곳을 유람했다. 평생 이 섬의 단 한 곳 만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고민의 여지 없이 이곳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나 원없이 즐긴 타이난에서 먹고 마신 것들이다.



1. Tiffany


주소 : No.103, Fuzhung Street, West Central District, Tainan City, 대만 70046

지도 : https://goo.gl/maps/U5TuR76gZAB7taNfA

시간 : 11:00 ~ 19:00 (월요일 휴무,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걸그룹 트와이스에 꽤나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취업 비자를 발급 받아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 도시는 의외로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트와이스에는 대만에서 건너온 친구가 하나 있고, 그녀의 고향이 바로 이곳, 타이난이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이 도시에서 꽤나 큰 카페를 경영하는 사장님이다. 이름마저 위엄 넘치는 '쯔위네 카페'의 사장님.



부디 이 도시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도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다 못해, 카이퍼 벨트 너머 우리 은하를 속속들이 채울 만큼이 되기 때문에.



안개처럼 흩뿌리는 빗속을 헤집고 다니던 중 만나게 되었다. 이곳의 이름은 Tiffany. 매대에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이름이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이름 만큼이나 충분히 발산하는 반짝임이 있는 공간이다.



어디든, 누구를 만나든 그 첫 만남의 짧은 순간이 남기는 잔상은 그 반감기가 유난히 길다.

이 도시와의 인연을 이곳으로부터 맺은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유별했다거나 마신 커피가 굉장했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공자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거리, 그 한켠에 정성스레 가꿔낸 이 공간은 그런 것은 아무렴이라 생각하게 할 만큼 따뜻하고, 다정하다.



나는 이곳의 따뜻함으로 타이난을 기억하게 되었다. 언제일지 모르는 훗날이지만 타이난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 때에도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나를 반겨주었으좋겠.

이곳의 이름은, Tiffany이다.


(참고로 쯔위네 카페는 가지 못했다. 타이난을 떠난 후에 그곳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그 때문이라도 나는 타이난에 또 갈 것이다.)



2. Win Chang Beef Soup(文章牛肉湯, 문장우육탕)


주소 : No. 300號, Anping Road, Anping District, Tainan City, 대만 708

지도 : https://goo.gl/maps/hZP2NoitNjMo8BUY7

시간 : 10:00 ~ 익일 02:00 (월요일만 20:30까지 영업)



사실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실망하기가 더 힘든 것이 대만에서의 우육면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픈 마음이 울져 흐르는 때가 있지 는가.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육면을 먹었다.



이것은 마치 드넓은 초원을 뛰노는 한 무리의 소떼를 배경으로 펼쳐진 당근밭과도 같다. 당근의 달큰함이 푹 고아낸 진한 육수에 녹아들다. 웬만해서는 국물을 남기는데 이렇게나 싹 비웠다. 역시나 맛있는 음식에는 큰 사족이 필요가 없다.



타이난에 계신 당신, 출출하신가요. 무엇하고 계십니까. 늦게 가면 자리 없습니다.



3. 京肴燒肉飯


주소 : No. 49, Section 1, Hai'an Road, West Central District, Tainan City, 대만 70056

지도 : https://goo.gl/maps/h1dnXGB8vccErQH28

시간 : 11:00 ~ 20:00 (화요일 휴무, 14:30 ~ 16:30 재료 준비 시간)



애국심 충만한 나의 혓바닥은 가끔 조국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빠져들고는 한다. 그럴때면 급한대로 고향의 탈을 어설프게나마 쓰고 있는 녀석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그 아쉬움을 달래주고는 한다.



뜻밖에 대만에서 고향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헛제삿밥이라고 이름 붙여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완벽한 우리네 명절의 맛이다. 굳이 찾아내어 먹지 않는 이상 만나기도 쉽지 않은 박나물이다. 그것이 내 접시 위에 떡하니 올라 있을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마 나는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깐 결론은, 그 익숙함에는 정겨운 맛이 있다. 마이쪙.



4. 四川成記涼粉涼麵


주소 : 700 대만 Tainan City, West Central District, 西門圓環321號

지도 : https://goo.gl/maps/zqDVVJqw2G5AZtiS7

시간 : 확인되지 않음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이미 경험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막연히 추종하게 된다면 나의 취향과 의견이 배제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 모두 원하는 바가 다름이 분명할텐데 그것을 몇 마디의 말로 재단하고 평하는 것은, 쉬운 길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만큼의 반대급부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거창하게 사족이 길었던 것은 이곳의 평점이 그리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다기에는 애초에 평점 자체가 얼마 없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는 굳이 구글 지도라는 것을 실행하여 동네 분식집과도 같은 이곳의 평점을 남기는 수고로움을 감내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중화식 냉면이라고 하는데, 땅콩의 향이 그윽한 초계국수라 부르면 적절할 듯 싶다. 한 그릇에 얼마 하지 않는다. 단 돈 60원, 한화로 2,500원도 안되는 가격이다. 그러니깐 밑져도 본전이니 한 번 먹어보면 어떨까.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타이난에서 먹은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台南-秘氏咖啡


주소 : 700 대만 Tainan City, West Central District, 國華街三段123-160號(永樂市場 二 樓)

지도 : https://goo.gl/maps/TDZRfU6uRopGQtMN7

시간 : 14:00 ~ 22:00 (수, 목요일 휴무)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사실 지금까지의 주절거림은 이 하나의 카페를 위한 사족이었다.


감히 말 할 수 있다. 이곳은 내가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처음 붙여보는 카페이다. 나의 첫 '인생 카페', 그렇게 말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지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조금은 어수선한 시장통을 만나게 다. 그리고 아마 곧 갈길을 잃고 헤매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오토바이 수리점을 지나, 세월의 흔적이 지나치게 고스란한 낡은 계단을 따라 한 층을 올라간다. 그 사이에 조금은 묘하게 흐르는 시간은, 마치 이곳이 센과 치히로가 만난 별세계로 통하는 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마리의 고양이와 손톱 정리에 하루의 대부분을 쏟는 것 같은 젊은 사장의 공간, 일을 할까 싶어 찾은 곳이었지만 책상위에 놓인 노트북은 곧 가방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단지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이곳의 전부였다면, 감히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이름 모를 모국인의 친절인지 이곳에는 한국어가 쓰여진 안내판이 있다. 그 안내를 따라 원하는 맛을 머릿속에 그려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사의 몫이다.


이 커피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인생을 만나는 순간인데 그 정도의 기다림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커피를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감히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중에 단연코 군계일학이라는 말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을 정도가 된다. 경험해본 맛과 향의 편협함으로 인해서 이것을 묘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정말이지, 나는 이곳을 다시 찾기 위해서 예정에도 없던 이틀을 타이난에서 더 머무르게 되었다. 비록 그렇게 연장된 이틀 이곳 주인에게는 휴일이라는 것을, 나는 숙소를 예약 다음에야 발견했지만 말이다.



결국 이날 이후로 이곳을 찾는 일은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또 조바심이 난다. 머지 않은 시일에 내가 타이난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이곳이 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반드시.



그러니깐 귀여운 냐옹이나 한 번 더 보고 가시라. 냐옹.




나에게는 무한한 따뜻함과 행복으로만 남아있는 이곳은 타이난이다. 당신의 여행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이곳으로 오시라. 타이난은 분명히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으니깐 말이다.






타이난이 예쁜 만큼, 이 가방도 예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