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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Apr 20. 2017

가방에서 발견한 쪽지 한 장


여느때와 다름없이 술집에 들어와 혼자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갑작스레 할일이 생겨서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종이 한 장이 땅바닥에 툭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다놓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가끔 AS를 필요로 하는 분들의 연락을 받는다. 가방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마주하지 않았으면 하는 가슴아픈 순간이지만 이미 가방이 다쳤다고, 고쳐달라고 연락을 받는 순간에 그런 가슴앓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에게는 '추억상자'라고 이름 붙여진, 신발을 담을만한 크기의 종이상자가 하나 있다. (이 글 참조) 그곳에는 주로 여행에 다녀와서 추억할만한 거리들을 담고는 하는데, 요즈음 새로 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가방에 하자가 생기는 것은 꽤나 불쾌한 일이다. 당장 내일 메고 나가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도 집에 굴러다니는 가방이 하나도 없다면 갈 곳 잃은 짐들을 보는 마음은 황량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불쾌하고 번거로운 수선을 위해서 가방을 보내주시는 거의 모든 분들께서는 메모를 한 장 씩 남겨주시고는 한다. 딱히 잘 한  없는 그 민망한 순간에,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메모를 읽고 나 그때는 말로 표현하기에 참 어려운 갖가지 감정들이 뒤엉키어 찾아오고는 한다.


'가방 하나 파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 하는 일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재화오가는 거래로 말미암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관계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이 오가는 순간의 희열은 나로 하여금 이 일을 더 잘하고 싶게 만든다.


오늘도 고객님께 가방을 전하기 위해 일산에 다녀왔다. 나의 멍청한 실수로 인해서 잘못된 색상이 배송되었는데, 다음주 월요일에 여행을 떠나신다는 고객님의 불안함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파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물류창고에서 가방을 챙겨서 고객님께 직접 전해드렸다. 택배로 주어도 되는데 참 수고가 많으시다는 고객님의 말씀에 '참 잘 왔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의 크기만큼 행복했다.



아마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올거다. (그래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이 비단 가방을 팔아서 돈을 버는 단순한 행위의 연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마침, 고객의 마음을 보듬는데 집중하면서 건강하게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의 한 애견용품 쇼핑몰의 기사가 눈에 밟힌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러해야 한다.


오늘도 차오르는 달이 휘영청 흐늘거린다.






새로운 색상과 함께 더 새로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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