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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28. 2017

여행을 가다. 두번째 제주도, 이튿날

제주도 '17.07.14(금) ~ '17.07.17(월)


간밤, 후끈하게 달궈진 공기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굳이 핸드폰 녀석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그 더위는 너덧번은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은 따끔한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들이친다.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차가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첫날 시달린 것이 과했던 탓에 멀리가는 것은 애초에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의 행선지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에는 역시 가본 곳이 제일이다. 비록 휘몰아치는 바람 한가운데에서 무진장 고생을 하긴 했지만 적당히 맛있는 음식이 있고 걷기가 썩 괜찮은, 애월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볕의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으면, 몇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목이 말라온다. 집 앞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시켜본다.


한때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던 여자친구의 남동생. 지금은 제주도에 내려와 전혀 다른 일을 배우면서 고군분투중이다. 조금은 갑작스럽고 난데없기도 한 결정이었지만 꽤나 즐겁게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른 무엇보다 제주도가 좋은 이유는 바로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는 것인데, 이곳 저곳에 숨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이 큰 낙이라고 하는 동생 덕분에 여행하는 동안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은 하지 않게 되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애월까지는 무척 가깝다. 요즈음은 이효리씨가 살고있는 동네로 알려진 덕분에 북적임을 더했지만 원래 그런 동네는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교 신입생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차피 그때는 제주도라는 동네에 중문 빼고 조용하지 않은 동네가 없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걸쳐있었던 덕에 가장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마땅히 아는 곳도 없고, 굳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는 식당을 놔두고 모험을 하고싶지는 않았던 탓에 지난 겨울에 들렀던 식당을 다시 찾았다.



배가 어지간히 고팠나보다. 사진 한 장 남겨도 됐을것인데,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음식 사진 한 장이 없다. 물회와 옥돔구이, 오분작 뚝배기를 시켰는데 어김없이 간이 강하고 자극적이다. 본능이 이끌리는 달고 짠 맛의 향연인데, 맛이 없을 수 없다.



정해진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발닿는대로 걸으면 되는 여행. 그래서 지도를 찾아볼 생각 같은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걸어보았다. 올레길을 알리는 표식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오른편으로는 부서져 흩날리는 파도가 공기에 실어나른 비릿한 바다 냄새가 가득하다.



길 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양식장 건물을 만났다. 설비는 다 갖추어져있는데 인기척도 없고, 물고기도 살지 않는다. 호기심이 일었으나 여전히 사용하는 건물일까봐 구석구석을 누비지는 못하였는데, 반짝이며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제주 앞바다를 벗한 채 말없이 서있는 모습에 괜한 처연함이 일었다.



다음에 이곳을 찾아와도, 그때도 우두커니 이 자리에 서있을런지.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고 한 굽이씩 넘다보니 어느덧 곽지해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파도치는 소리와 바람부는 소리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와 흔적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효리네 민박'에 나와서 유명해진 산책길이었다.



드디어 해변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이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이 모습은 아름답구나 생각이 들게 하지만, 사실 저 당시에는 너무 덥고 지쳐서 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곽지 해변. 깨끗한 물빛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문다. 하루종일 더위에 시달렸지만, 흩어지는 파도소리는 피곤함을 가시기에 충분했다.



처음으로 모래사장에서 담은 가방 사진. 서울 근교에는 이런 해변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 아쉬움을 가득 담아 원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곽지에서 맞은 짧은 여유를 뒤로 하고 다시 제주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어야 했으므로. 찾은 곳은 제주흑돼지집.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먹어보는 고기였다. 딱히 무얼 먹어야겠다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 역시 무척 우발적인 결정이었다.



흑돼지는 부담이 과한 듯 하여 백돼지를 시켰다. 그마저도 가격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 돈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만큼 두툼하고, 고기가 좋다. 정말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고기였는데, 돼지고기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이 부러워지게 될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야말로 '반전의 묘' 그 자체.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제주의 저녁이 기분좋게 무르익는다. 둘째날 밤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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