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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Mar 22. 2018

여행을 가다. 대만 타이중, 첫번째

타이중, '18.03.07(수) ~ '18.03.11(일)


조금은 갑작스럽게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퇴사한 기념으로 대만 여행을 가볼까 싶은데 나도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사실 내 의사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특가도 이런 특가가 없어서 꼭 가야겠단다.


비행기가 언제 출발하냐고 물어보니 내일 오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시간이 화요일 오후 두시니깐.. 딱 스물여섯 시간이 남았다.


나는 대만의 여배우인 천옌시를 좋아한다. 그래서 대만의 곳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스크린 속 천옌시의 미모와 발랄함을 제외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말 그대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내일 떠난다는 그 비행기는 타이페이가 아니라 타이중이라는 곳으로 날아갈 예정이란다. 나는 그 이름을 네이버 스포츠에서, 그나마도 일 년에 한 번 프로야구 구단이 전지훈련으로 한창 바쁜 시기를 제외하고는 들어본 역사가 없는데 말이다.


너무나 바쁜 나머지 하루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여자친구의 손은 내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보다 빨랐다. 정말 예정에도 없던, 생각지도 않았던 대만행은 그렇게나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보딩 브릿지로 발걸음을 옮기기 직전까지도 노트북을 손에 놓을 수 없었고 하늘 위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가보는 동네에 대한 호기심은 일더미에 파묻혀 딱 미쳐버리기 직전인 나의 일상을 이겨내고 말았다. 이 비행기는 결국 나를 타이중으로 실어 나를 것이다.



유난히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아무리 하늘로 치닫아도 희뿌연 장막이 걷힐 생각을 않는다. 마침내 맞이한 파란 하늘이 어찌나 반갑던지.



참으로 유난스러웠다. 정신을 한 곳에 온전히 쏟기 힘들 정도로 요란스러운 비행기 덕분에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키보드만 잡고 미간을 찌푸리는 것 밖에 없었다. 타이중이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간단한 상식만 하나 머릿속에 집어넣고 왔는데, 마중 나오는 활주로 옆으로 슬며시 펼쳐지는 풍경들이 기대 이상으로 목가적이었다. 덕분에 선물 받은 약간의 당황은 덤.



공사 중이라고는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없다. 타이중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참으로 간만에 기차 아닌 것에 몸을 실어 공항을 빠져나온다. 그런 덕분에 시작부터 완벽하게 지쳐버렸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타이중의 버스는 사람 사는 냄새를 필요 이상으로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담배냄새에 찌든 시트가 인상적이었던, 그렇게나 기를 쓰고 타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의 소나타2가 갑자기 떠올라 기대하지도 않았던 유년기를 잠시간 추억하였다.



인천에서 타이중까지 날아오기를 두 시간 반쯤 걸렸고 타이중 공항에서 숙소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한국과 대만의 사이가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탓인지, 공항과 숙소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먼 것에서 연유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숙소에 도착하였다. 오늘부터 이틀간 보금자리가 될 곳은 타이중 역에서 걸어서 10분이 걸리지 않는, 나름 괜찮은 입지를 가지고 있는 호텔. 을 가장한 게스트하우스가 조금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은 '키위 익스프레스' 되시겠다.



토토로 형제가 숙박객을 맞이하는 이곳은 이 동네에서 꽤 명성이 있는 듯하다. 얼마나 대단한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만 2016년에는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무슨 상도 받았다고 하니 적어도 이 동네에서 평균 이상은 하는 숙소일 테다.



비록 평일이기는 했지만 두 명 합쳐서 4만 원이 되지 않는 가격에 이 정도 숙소에서 하루 묵을 수 있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고 깔끔하고 정갈하니 불평할 이유가 딱히 없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았기에 간단히 짐을 풀고는 밖을 나섰다. 원색으로 화려함을 발하는 대만의 밤거리는 홍콩의 그것과 닮아있는 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정한 구석이 있다.



대만의 밤은 짧다. 어스름이 지면 적막이 발을 맞춰 나란히 내려앉는다. 아홉 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거리 곳곳이 벌써부터 침묵에 잠기었다.



대만은 야시장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한다. 대만 영화를 그렇게 봤으면서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걷다 보니 발길이 닿은 곳은 '충효 야시장'.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곳이 아닌 것인지, 그 넓은 거리에  중국어가 아닌 목소리를 나와 여자친구 말고는 찾아볼 수 없다.



향긋하게 빵 익는 냄새, 코를 쥐어뜯어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취두부 냄새가 뒤섞인 거리를 걷다 보면 길게 늘어선 줄이 종종 보인다. 이른바 '현지인 맛집'이라고 일컫는 곳 아니겠는가. 대만 여행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일 수는 있겠으나, 내가 현지인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주린 배가 사정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지만 대만에서의 첫 끼니인데 쉽게 타협할 수 없다. 기합 한 번 넣고는 등짝에 눌러붙을 것 같은 뱃가죽을 잔뜩 움켜쥔 채로 야시장을 한 바퀴를 죽 둘러보았는데, 마치 고향에 온 듯하다. 포항의 죽도시장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은 익숙한 풍경에 여자친구와 나는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을 날아와 포항으로 여행을 왔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대만까지 건너오느라 고생한 우리에게 맥주가 함께하는 술상을 선물하기로 했다. 섬나라인 데다가 바다를 끼고 도시들이 발달했기 때문에 웬만한 도시에서는 해산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데 타이중도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재료가 어떤 요리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주방장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쉽게 말해서 이곳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이곳은 지나치게 현지인지라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혹시 올 생각이 있다면 중국어 할 줄 아는 친구를 어떻게든 섭외하도록 하자.



총 네 가지의 요리가 상에 올라왔다. 조개 볶음과 시금치 볶음, 박하향이 나는 면요리가 하나 있었고 파를 돼지고기로 말아 구워낸 음식까지.


왜 대만이 미식으로 유명한 곳인지 첫날 저녁부터 제대로 배워버렸다. 개인적으로 홍콩에서 먹는 조개 볶음은 그 향과 맛이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먹은 것은 간이 너무나 절묘했다. 3천 원도 하지 않는 대만 현지 맥주 역시 살짝 달콤한 향과 함께 시원하게 목을 넘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요리 네 접시와 맥주 두 병을 합쳐서 한국돈으로 25,000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덤.



시원하게 둘러앉아 바쁜 하루를 씻어 보내는 현지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푸근하게 번진다.



좋은 분위기에 취한 이곳의 밤은 첫날부터 완벽하게 즐겁다.



저녁을 먹기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찻집에서 밀크티를 한 잔 시켰다. 현지인의 맛집은 때론 현지인들이기에 맛있는 집일 때가 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완벽하게 어둠에 잠겨버린 거리는 시침과 분침이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감각마저 무뎌지게 만들었다.




익숙한 듯 어딘가 낯선 동네 타이중, 그 첫날밤이 거리에 내리는 고요와 함께 조용히 잠기었다.





어김없이 예쁘다. 타이페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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