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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30. 2023

2023년 3분기 회고

2023년도 한 쿼터 남았다!

 이번 3분기는 퇴사라는 이벤트도 있었고, 보름간의 미니 베가본딩도 경험했다. 이렇게 확보된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여느 때보다도 많은 독서를 하고, 다양한 생각을 했으며 그 결과 지금까지와는 꽤나 다른 여러 결심을 했다. 


그래서 이번 회고는 조금 다른 포맷으로 진행해볼까 한다. 아래의 내용들은 이번 3분기를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며 4분기를 지탱해 줄 생각이다. 



Personal OKR을 버리다.

 OKR은 요즘 스타트업이라면 하나씩 쓰는 성과 관리 지표다. 제조업 기반 전통 기업들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리콘벨리로 대표되는 IT기업 문화를 지향하는 한국 스타트업에서 많이 쓴다. 나는 IT 스타트업을 주로 다녀서 이에 더 익숙하다. 

OKR은 성과 관리 도구다


 4년 전 나는 왜 Personal OKR을 작성했을까? 무려 4년 전인데, 그때도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테마인 '개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회사다'라는 말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OKR 이론에 대해 접하고, 내 삶을 체크하는 척도로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연간 OKR을 활용했다. 

올해 세운 Personal OKR

 하지만 OKR은 수시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시스템 혹은 그만한 리소스 투자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Todo List 관리하듯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체크하다 보니 종종 안 하거나 대충 기록하는 경우가 생기고, 이런 식으로 몇 달 방치되는 때도 있었다. 


 또한 목표를 정하거나 평가하는 데 내 생각이 100% 반영되다 보니 너그러이 평가하거나 엄격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발생해 제대로 동작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회사나 커다란 조직에서는 흔히 감사 라든가 감찰을 통해, 국가는 삼권분립이라는 제도로 이 오용을 막는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부서가 없으니까 이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이 이 굴레를 끊어내기 적기라고 생각했다. 4년이라는 매몰비용을 지불했으니 된 거다. 아마 당분간 다신 쳐다보지 않을 것 같은데,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할 시기가 오면 다시 도전해보지 않을까 싶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너무 유명한 문장이라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집단이 생길 정도의 주식 명언이다. 소위 말하는 올인을 하지 말고 분산투자를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투자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최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요소는 돈과 커리어다. 3분기의 빅 이벤트인 비자발적 퇴사를 겪고, 따끈따끈한 신상 AI의 힘을 무력하게 느끼며 든 생각이다. 우선 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돈에 대해서는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업이라고 부르는 회사에서 나갈 이유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급진적이다. 내가 아플 수도 있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퍼포먼스가 안 나올 수도 있고,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그냥, 일이 하기 싫어질 수도 있다. 그 결정에 돈이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긴 힘드니 여러 파이프라인을 가진다면 어떨까? 딱히 너 아니어도 돈 나올 구석은 있다 마인드로 회사를 다니면 돈이라는 요소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다음은 커리어다. 올해 처음으로, 내 직업 자체가 없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도 한 게, 무엇이든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주로 했던 작업 중 하나인 디자인 리소스를 웹 문서로 변환하는 과정을 자동화해 주는 툴을 봤다. 나보다 알고리즘을 훨씬 잘 작성하는 AI와 함께 일도 해봤다. 


부모님 세대에는 평생직장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히 쓰였다고 하는데, 이젠 평생직무라는 용어도 쓰기 힘든 시대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관리할게 많아지고 리소스가 집중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안정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선 돈과 직무에 한해서는 여러 바구니에 옮겨 담는 과정을 심도 있게 고민해보려 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러기에도 쉬운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직무 안정성에 대하여

 나는 직무 안정성이라는 용어를 싫어했다. 자기 커리어에 자신 없는 루저들의 힘없는 외침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노동법이라는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이 연상되었다. 지금도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적음에도 꾸준히 회사에 출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견지하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젊고 어린 생각이다. 최근 화두였던 노인 빈곤에 대한 콘텐츠를 보다 보니, 내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넘어져도 혼자 일어서면 그만인 젊은이라서, 내 손으로 먹여 살려야 할 식구 하나 없는 1인 가정이라서, 당장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서다. 


 가진 게 없는 상태가 되면 마치 누구나 배수의 진을 치고 전력을 다하면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보통의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해결되지 않으며 어중간한 나이와 꼬일 대로 꼬인 커리어는 그 문제해결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제야 좀 보인다. 직무 안정성은 설계 가능한 인생의 큰 축을 담당한다. 다행이다. 이번 분기에 아주 값진 사실을 배웠다. 


데이터 드리븐 라이프

위에서 Personal OKR을 버린다고 말했지만, 나는 평가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분기 평가 결과 보고서고, 주마다 하는 리뷰, 일일 단위로 기록하기로 한 정보도 잘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회사처럼, 개인도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분기를 평가할 땐 일일, 주간 평가 기록을 종합하여 평가할 수 있고, 한 해를 돌아볼 땐 분기와 월간 평가 지표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평가된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주기의 평가지표를 수정할 수 있다. 


 이번 3분기에는 쉬면서 어떻게 이걸 가능하게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 어떻게 하면 데이터를 누락 없이 모을 수 있을까?

-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 리소스를 최소화하려면 어떤 부분을 줄이면 될까? 

-...


 다음 분기엔 꼭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으로 분기를 평가할 거다. 이 과정은 통합(Integration)자동화(Automation)를 통해 삶의 루틴(Routine)을 강제하는 방법으로 실현하려고 한다. 


루틴의 중요성

 루틴은 좋은 습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좋은 효과를 위해 일부러 학습한 행동이다. 특정 시간에 이미 뇌와 몸이 동시에 알고 있는 반복된 일상이다. 좋은 예시로 출근시간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강남역으로 출퇴근할 때를 보면 8시 55분 전에 나가면 회사에 9시 30분 즈음에 도착할 수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지켰던 것 같다. 


 물론 루틴 자체도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내 생각엔 하루에 예측 가능한 시간이 생긴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꼭 해야 하는, 하면 좋은 일들을 보장해 준다. 가령 오늘 하루의 건강기록을 잠들기 전에 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다음 날 입을 옷을 결정하는 루틴이 있다면 아침 준비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루틴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모듈화와 자동화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모듈화와 자동화의 힘

 모듈화는 귀찮은 일을 간단한 버튼 하나로 묶는 것을 말한다. 애플에서 제공하는 단축어라는 앱을 활용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아침 루틴, 저녁 루틴이 하나의 버튼으로 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침루틴은 그날 캘린더에 적힌 내용을 투두 리스트로 옮기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브리핑을 만들어 읽어주는 것이다. 브리핑이 끝나면 바로 팟캐스트가 실행된다. 명상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모든 활동들을 일일이 앱을 켜서 기능을 실행하거나 확인하면 아마 1주일도 못 갈 것이다.


자동화는 루틴 생성에 날개를 달아준다. 특정 시간이나 특정 집중모드가 켜졌을 때, 출근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에 위에 만든 모듈을 실행시키는 것이다. 

단축어(좌), 자동화(우)

아직 다 만들진 못했다. 더 기록하고 싶은 게 많고, 애플에서 제공하지 않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4분기에는 완전한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개발자로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할 것이다.


통합이 주는 생산성

 3분기에 이루어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노션의 점유율을 낮춘 것이다. 나는 모든 데이터를 노션에 기록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서비스를 데이터 대통합(Data Integration)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주변에서 노션 전도사로 통할 정도로. 


 그런데 이번 분기에 개인 데이터를 기록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데이터를 하나하나 기록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고역이었다. API를 통해 자동화할 수는 있었지만 추가적인 개발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럴 바에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으므로 매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애플 생태계로 몸을 던졌다. 애플에서 제공하는 기본 앱들은 퀄리티가 매우 좋다. iCloud를 통해 기기간 연동도 뛰어나다. 또한 단축어와의 궁합은 환상이다. 단축어에서는 기본 로직 외에 각 앱의 특수한 기능들을 자동화할 수 있게 커스텀할 수 있다. 그래서 캘린더나 미리 알림, 메모, 건강, 팟캐스트 등의 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데이터를 iCloud로 통합하고, 주기적으로 내 개인 데이터베이스로 옮기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또한 만든 지 얼마 안 되었고 아직 추가할 기능이 많지만 4분기 중에는 정상동작하도록 얼른 고칠 것이다. 나중에 잘 동작하면, 책과 강의로 만들 생각도 가지고 있다. 


도파민 중독 치료

 이번 분기의 시작부터 도파민 중독 치료를 시작했다. 후반부에 국한되긴 하지만 사람이 휴대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지를 뇌과학적으로 지적한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 충격받아서 휴대폰 사용량을 추적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4개월째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시작할 때보다 훨씬 휴대폰을 적게 사용하게 되었다. 상당히 고무적이다. 


 시간은 내가 가진 자산 중 가장 값진 것이다. 하지만 매일 공짜로 주어지는 만큼 만연하게 사용되는 재화인데, 이렇게 누수되는 시간을 줄이고 낭비가 치솟았을 때 경각심을 가지고 다음 주를 살아갈 수 있다. 이 데이터는 꾸준히 모을 것이다. 아주 잘 한 기록 중 하나다.


마치며

 이번 분기에는 나라는 회사가 잠깐 휘청였다. 퇴사라는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발생했고, 이를 중심으로 전환된 인생을 전반적으로 대처하는데 에너지를 쓰다 보니 그랬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이 시간을 전화위복 삼아 퀀텀점프에 성공한 것 같다.


 얼마나 즐거운 3개월이었는지 모른다. 거의 30권의 책을 읽고 하루에 3~4시간을 산책과 몽상에 쏟아부으며 나와 대화를 했다. 살면서 다음 스텝이 이렇게 두려움 없이 기다려진 때는 없었다. 아마 당장은 겉보기에는 다르지 않은 삶(말 잘 듣는 회사원)을 살게 되겠지만, 곧 다양한 날개를 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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