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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May 07. 2024

9. 나가사키 톺아보기 - 북규슈 기차여행

부산인가 나가사키인가

 한국사람이라면 나가사키를 가본 적은 없어도 들어보긴 했을 거다.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장소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고 그 역사가 우리나라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에 그렇다. 이 도시는 규슈 섬의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후쿠오카에서 기차 타고 한 2시간이면 올 수 있지만 보통 후쿠오카 자체를 짧게 오다 보니 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웠던 시마바라 소도시 여행을 마치고 저녁이 다 돼서 나가사키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 자체는 크고 밝았다. 일본 대도시 기차역들은 대부분 이렇게 크고 쾌적하게 만들어져 있고, 항상 거대한 쇼핑몰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나가사키 역

일단 너무 늦어서 저녁을 때우러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구글 맵을 좀 살펴보고 적당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가사키 특산물이 뭔진 모르겠지만 항구 도시니까 해산물 같은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배고프니까 그냥 들어간 곳이 라멘집이었다. 대파라멘이 주력 메뉴였는데 숨은 고수의 라면을 먹은 것 같았다.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마시고 나왔다. 

대파가 아주 많이 들어가고, 향도 살아있었다.


늦은 저녁이어서 그런가 그냥 남는 시간은 바닷가 근처 산책을 했다. 일본 대도시는 밤에 돌아다녀도 크게 문제가 없어서 슬렁슬렁 걸어 다녔는데 야경이 예뻐서 꽤 멀리까지 갔다 왔다. 그래도 가로등이 없는 어둑어둑한 곳은 무섭다.


부산의 야경과 크게 다른가 싶을 정도로 밤에 본 바다의 모습은 특별하달게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바다 야경은 역시나 예쁘다.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

그래도 왔으면 가봐야지. 원래 대학생 때 장교 동기들과 방문했던 군함도(하시마 섬)를 다시 가볼까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이곳을 왔다. 


나가사키의 명물인 노면열차를 타고 간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의 중앙에 이렇게 생긴 노면열차가 다닌다. 이용료는 얼만큼 가든 정액제로 160엔. 괴랄한 가격정책을 가진 일본의 교통비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


티켓을 사기 전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연도별로 나선형으로 적혀 내려가는 구성이 현재에서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박한 배치였다. 


티켓은 220엔이었나, 자판기에서 구매했다. 다 보고 느낀 건데 이 정도로 좋은 퀄리티의 박물관 입장료 치고는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심지 모형부터 폭타이 터졌을 시간에 맞춰 정지된 괘종시계, 투하된 팻맨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거대한 모형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가늠해 보자면 한 5m는 되지 않을까. 

영상과 잔해로나마 그날의 참상을 엿볼 수 있었지만 실상은 담지도 못했을 거다. 여행을 하며 사진을 정말 많이 찍어봤지만 입이 벌어지는 눈앞의 풍경들은 어차피 담기지 않을걸 알기에 카메라를 슬며시 내리고 눈에 담기 마련이지 않은가. 


국가 간 잘잘못을 떠나 원자폭탄은 절대 다시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래 사진에서는 무슨 의미인진 모르겠지만 이곳에 무지개색 끈들을 엮어서 만든 동아줄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안 물어봤을까.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공원은 평화공원이라는 곳이다. 원폭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공원인데 지금은 현지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원이 되었다. 평화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없이 평화로운 사람들이 그득했다 (날씨도 좀 도와줬다)


이 날은 평화 공원에서 유치원 합동 체육대회가 있는지 거의 1~2백 명 정도 되는 꼬맹이 학생들이 귀여운 모자를 하나씩 쓰고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거의 축구장만큼 넓은 공원이었는데 전부 관리가 잘 된 푸른 잔디로 덮여 있었고 넘어져도 하나도 안 아플 그 공간을 가득 메워 뛰놀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볼 수 있었다. 도란도란 일본어로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데 그 모습 자체가 아주 귀여웠다. 뭐라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 뭐라고 하기도 했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대꾸해 줬을 텐데 아쉽다. 


마치며

물론 나가사키에도 재밌고 예쁜 장소가 많다. 시간만 있었으면 둘러보고 싶은 장소도, 맛집도 꽤 많았다. 그래도 이곳들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과 그 옆에 딸린 평화공원은 의미도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는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다. 


다만, 큰 재미는 없다. 내가 좀 심심한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가 나는 만족하는데 친구들하고 같이 갈만한 곳은 아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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