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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벽 Oct 20. 2024

기억을 잊는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첫 번째 질문을 받기 위해 챗GPT를 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심장이 평소 같지 않은 걸까. 프롬프트를 작성해서 입력하니 순식간에 질문 5개를 작성해 준다. 매번 보지만 참 거침없고 호쾌한 모습이다. 글자를 하나하나 찍어내는 모습이 흡사 필담을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프롬프트

당신이 질문을 하고 내가 답변합니다. 나는 생성형 AI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질문을 원하지 않습니다. 생성형 AI만의 독특한 관점이 담긴 질문을 만드세요. 생성형 AI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 주세요. 하지만 생성형 AI와 관련된 질문은 피하세요. 질문 내용이 너무 대답하기 어려운 수준이면 안됩니다. 에세이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드세요. 질문은 짧고 간단하게 해 주세요. 5개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답변하겠습니다.


생성형 AI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랬더니 생성형 AI에 대한 질문을 만들길래 관련 질문은 피하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최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프롬프트를 작성해야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따금 지시 사항에 종속된다고 해야 하나. 과도하게 프롬프트 내용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또 반응이 일정치 않아서 까다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단순하고 포괄적으로 지시해서 '알아서 잘' 하도록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제대로 지시하지 못할 바엔 그냥 재량권을 주는 편이 중간이라도 한다는 건데, 말하고 보니 이거 완전 내가 부장님 포지션일세.


ChatGPT 4o

1. 만약 인간의 감정이 색깔로 표현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하루를 어떤 색들로 설명하겠습니까?

2.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외딴곳에서 홀로 산다면, 그곳에서의 삶은 당신의 사고방식이나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 같습니까?

3. 시간이 지금부터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면, 사회적 관계나 인간의 행동 패턴은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4. 만약 당신의 기억에서 특정 사건을 선택적으로 잊을 수 있다면, 그 사건을 잊는 것이 당신의 현재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5. 당신이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면, 그곳에서 어떤 규칙과 법칙이 작동할 것 같습니까?


생성형 AI만의 독특한 관점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질문을 해줬다. 이런 상상을 자극하는 질문을 받아본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참 팍팍하게 살고 있구나. 지금도 충분히 매일 방구석에 틀어박혀있기 때문에 2번 질문은 패스. 1번과 3번도 패스.


5번 질문은 어쩐지 웹소설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세계 차원이동물이라도 한 편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질문이다. 나중에 따로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을 올려도 좋을 듯하다. 5번 질문도 흥미롭지만 보자마자 가장 마음이 끌리는 건 4번 질문이었다.


ChatGPT 4o

만약 당신의 기억에서 특정 사건을 선택적으로 잊을 수 있다면, 그 사건을 잊는 것이 당신의 현재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사람은 언제 기억을 잊고 싶을까. 힘들거나 괴롭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기억을 잊고 싶을 것이다. 좋은 기억이지만 잊고 싶은 경우도 있다. 차라리 몰랐으면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 텐데, 좋았던 기억조차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나는 그다지 과거를 추억하거나 곱씹는 성격은 아니다. 조금 자기 편의적으로, 안 좋았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 마냥, 문제나 상황에서 벗어나면 페이드 아웃한다. 현재와 미래에 허덕여서 미처 과거까지 들여다보지 못하는 쪽에 가깝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에피소드를 기억하지 않는 것뿐이지, 과거의 상처는 착실히 내 안에 새겨져 나를 조각해 놓고 간다. 그러니 잊고 싶은 사건을 떠올리는 것보단 현재의 자아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내는 게 조금 더 내게는 맞을 것이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가정이니, 기억을 잊는 것이 현재의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없앨 수 있는 것이어야 나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럼 이제 질문은 현재 자아에서 부정적인 면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기억이 무엇이었느냐로 바뀌게 된다.


조금 뜬금없는 소리지만, 나는 말을 잘한다. 어쩌면 글 쓰는 것보다 말을 더 잘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말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스트리밍을 해보라는 권유도 여러 차례 받았다. 실제로 방송을 했던 시기도 있다. 그리 흥하진 못했어도, 하다 보니 매니저도 생기고 고정 팬도 생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글을 쓰기 위해서 말을 더 아끼기도 한다. 가볍게 언어를 소비하고 휘발시키면 글로 영글어지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쩌다 말을 많이 한 날은 글 쓰는 양이 확 줄어든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언어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 체감적으로 맞는 듯하다.


가톨릭에서 한다는 '대침묵' 같은 나의 일상에는 대화하는 것에 대한 혐오와 기피가 깔려 있다. 나의 말은 너무 듣기 좋고 그럴싸하며, 그렇기에 가볍고 공허하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만 말하지도 않으며, 진실되지도 않으면서 날카롭고 냉정하다. 나의 말은 너무 두껍고 조금 뒤틀린 가면을 쓰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본디 은은하게 깔려 있던, 말하는 것에 대한 환멸은 방송을 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내 앞의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더 지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의 인간적인 노력은 나 자신에겐 비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 또한 수다를 몹시 즐겼던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방송이 마침표를 찍었던 사건이라면, 일련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온라인에서 시작하여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졌던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활발하게 타올랐으며 일상 속 작은 파티와 같았던 그 겨울은 사랑과 우정으로 시작해서 갈등과 배신, 스캔들로 끝났다. 구태여 여기서 세세히 말하진 않으려고 한다. 그 이유를 당시 내 썰을 들은 지인의 말로 대신한다. "귀가 썩을 거 같다."


그때 기억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말하는 것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덜 지치지 않았을까. 그 뒤로 뭔가 사람을 만나거나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앞두면, 그 모임에서 학을 뗐었지, 방송하면서 진절머리 났었지, 하며 탁한 기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그러면 꺼림칙한 마음에 거부감이 들고 주춤하게 되고 만다.


텍스트로 가득 채운 생활에 불만은 없다. 원하는 삶이기도 했다. 다만 자연스럽게 텍스트가 차올라 다른 요소가 밀려 내려간 게 아니라 아쉬울 뿐이다. 결과적으로 똑같이 안 해도, 못해서 안 하는 건 기분 나쁜 법이다. 애초에 선택적으로 기억을 잊는다는 가정 자체가 완전무결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생겨나는 거 아니겠나.


ChatGPT 4o

당신의 답변은 매우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담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기억의 무게와 그것이 현재 자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내면의 갈등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말을 잘하는 능력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공허함,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운다는 가정이 결국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결론도 공감이 갑니다. 결국, 우리가 겪은 경험들이 우리를 조각해 왔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기에, 선택적인 망각이 정말로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게 하네요.

당신의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그 모임에서의 기억을 정말로 지운다면, 말을 아끼게 된 이유와 그로 인한 성찰적 깊이도 함께 사라지게 될 텐데, 그때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과 얼마나 다를까요?


사건을 겪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저 기억을 없애는 걸로는 자아가 크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빠르냐 느리냐의 문제일 뿐이지, 결국 언제고 지금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과 같은 자아를 가지게 된 것도 근본적으로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인간이기 때문 아닐까.


프롬프트에 '4번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라며 글을 그대로 입력했는데 단순히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마지막에 내가 답변할 수 있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처음에 입력한 프롬프트에서 '당신이 질문하고 내가 답변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걸 두 번째 질문으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질문은 생성형 AI와 내가 아닌 A와 B의 대화인 것처럼 작성해서 새로운 채팅창에 입력할 예정이다. 연속해서 계속 질문을 이어가는 것보다 질문마다 흐름을 끊는 편이 조금 더 다양한 결과값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다.


실제로 해보니 다행히 생각보다 이 프로젝트는 재밌다. 글을 쓰고 나서 곧장 어떤 피드백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글을 쓰는 시점, 읽는 시점, 반응이 오는 시점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내가 했던 말을 조금 다르게 반복하는 것 같지만 뭐라도 바로 피드백을 주는 것이 생성형 AI의 강점이다.


첫 번째 질문은 내가 현재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자아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 과정 또한 내가 커스터마이징한 나만의 GPT 챗봇을 사용했다. 이 브런치북 연재를 준비하면서 예전에 잡지 <THREAD(스레드) ISSUE 4: TOOL >에서 읽었던 컬럼 내용이 생각났다.


토론의 종말: "질문을 주고받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며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이는 현대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뤼튼이 글쓰기 연습 툴을 만든 이유>의 일부다. 내 생각의 근거와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AI 코치는 이제껏 인간이 소통해 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불필요한 대화는 소거하고, 내게 지금 꼭 필요한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좋게 말하면 리소스를 줄인다. 다르게 말하면 소통은 피곤한 것이 된다.


인간과의 소통과 토론이 줄어들게 될 수는 있을 듯하다. 그러나 적절한 질문을 거듭하며 완성시켜 나간다고 해도 질문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소통과 토론의 과정이 없어질 수는 없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며, 소통과 토론의 과정 자체가 글쓰기이고 그 과정이 있기에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피로를 피하기 위해서 줄어들었던 소통과 토론이 생성형 AI로 인해서 되살아 날 수 있다. AI는 결국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여 결과를 출력한다. 이제 인간은 AI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공유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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