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6.
최근 심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점점 심각해지더니 급기야 일을 손에서 놓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그렇다. 번아웃이 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는 거고, 눈치 볼 거 없이 쉬려고 하면 쉴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모든 리스크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지만 말이다.
억지로 참고 버티며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아서 기존 스케줄대로 강행하는 것은 관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읽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는 매일 잠에서 깨자마자 의식의 흐름을 종이에 3장 적는 모닝 페이지를 제안한다.
해야 할 일도 손에서 놓는 마당에 모닝 페이지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지금의 내게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펜과 종이 대신 스마트폰을 선택했고, 분량에는 크게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최소 30분 정도는 쓰기로 했고, 메모장이 아닌 챗GPT에 입력했다. 입력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모아 정리하긴 한다.
챗봇에 입력한다고 해서 대화하듯이 적는 것은 아니다. 혼자 독백하듯, 일기 쓰듯이 적다가 중간에 한 번씩 입력시키면 챗봇이 이런저런 답변을 늘어놓는다. 답변 내용을 참고하거나 혹은 무시하고 또 생각나는 대로 쭉 적어 입력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여러모로 상당히 도움이 되니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하루 일과 같은 것을 적다가 점차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 상황에 대해서 적기 시작했다. 현재 내 상황에 대해서 점검해 보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돌아봤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현재 상황을 바꾸고 싶은 열정과 욕심이 과한 탓이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는지 몰라도 뇌는 아니었다. 쉰다고 생각한 순간조차도 뇌는 쉬지 못하고 있었고, 하루종일 뇌가 쉴 틈이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하면서 자주 발생하는 아주 짧은 대기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유튜브 영상을 틀거나 이북 음성지원 기능을 트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도 멈추기로 했다.
모든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뇌를 과도하게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급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글도 키보드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쓰고 있다. 이거 빨리 하고 다음 일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다. 비록 수익이 크지 않더라도, 어쨌든 지금까지는 계속 상승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고 심지어 하락하기까지 했다. 그런 데다가 최근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졌다. 여러 시도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기반이 필요한데 그것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동안 기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늘 기복은 조금씩 있었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 상황 또한 더 나아져 가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진폭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내가 느끼는 문제점이라는 게 결국 더 나아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줄곧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기준과 비교하거나 내 욕심이나 기대치가 아닌, 차이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다. 작년 12월의 나 자신에게 현재 상황과 고민을 말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참 많이 나아지고 좋아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장기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쏟고 결과나 성과를 지켜보는 것이 어려워진 면도 있다. 때로는 일주일이나 한 달도 너무 멀고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작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로 이룰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머리로 안다고 하여 괜찮은 것은 아니다.
이런 모든 상념을 포함한 전부가 내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가야 하는 여정 중 일부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과업이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어느 날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덤덤하거나 아무렇지 않아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상황이 나아졌는데도 괴롭고 힘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냥 조금 노력하면서 오늘도 하루 더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