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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1. 2022

노오력은 종종 나를 배신한다.

눈물 골짜기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 지나가다 본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융통성이 조금 부족한 점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매뉴얼을 딱 지켜서 정해진 분량을 완수하는 것을 잘한다. 정해진 공부시간, 정해진 분량, 정해진 과업을 웬만하면 '정해진 기한'까지 제대로 완수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적어도 뭔가 과업을 수행할 때만큼은 파워 J, 즉 계획형이다. 그래서 내 주위에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보고 공무원을 준비해보라고 했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치료'라는 '과업'을 달성할 때도 여전히 존재감을 심하게 드러냈다. 몸이 비상사태에 돌입하자 전두엽이 미친 듯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식습관이 가장 중요한 열쇠인 장누수의 치료를 위해 음식 통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지 못하는 음식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단순 장누수 증후군이 아니라 원인 불명의 음식 알레르기와 건선까지 함께 왔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더욱 제한적이었다.


또한, 나는 음식의 종류도 종류지만 신선도나 보관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 요상한 증상이 있었다. 얼린 음식을 실온에서 자연해동하거나, 오래 건조하거나, 소금에 절여 변형된 장류, 장아찌류 모두 간지러웠다. 이 모든 것을 제외하고 장누수에 좋지 않은 대두, 설탕, 밀가루, 마늘, 고춧가루까지 제외하고 나니 우리나라에선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야채만 먹는 토끼가 되어야만 했다. 그것도 양념 없이. 그래서 먼저는 현미, 연어구이, 양배추, 브로콜리, 미역, 팽이버섯 6가지 재료만 사용했다. 장류도 간지러웠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천연 양념은 소금과 생들기름뿐이었다. 그렇게 똑같은 재료로 만든 똑같은 밥을, 3개월간 삼시세끼 먹으며 버텼다. 상상이 가는가?


옆에서 보던 남편이 너무하다 생각했는지, 중간에 다른 것도 먹고 과일도 먹으라 했지만, 얼굴에 건선이 번져 껍질이 뜯기고 있는 마당에 한가하게 먹고 즐길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 끊었다. 차라리 단거리 질주를 하고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고 끝날 줄 알았다.


역겨운 쑥과 마늘만 먹으며 3개월간 열심히 노오력한 결과는 간지러움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4알이었던 항히스타민제가 5알로 늘었고, 기립성 저혈압이 더욱 심해져 낮이건 밤이건 픽픽 쓰러지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인 '면역억제 주사'를 맞아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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