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5단계(1) -부정
정신의학에서는 소위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빅터 프랭클(이시형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첫 시작은 어느 날부턴가 온몸이 간지러운 것이었다. 잠을 자다가 두피가 너무 간지러워서 깨는 날이 많아진 것이다. 깨려고 깬 것이 아니라 그냥 피나도록 긁다 보니 잠을 설쳤다. 사실 이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3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연애 때부터 남편이 항상 물었다. "왜 너는 낮잠 잘 때 보면, 항상 얼굴을 자꾸 만지고 긁어?"
병이 한꺼번에 터진 것은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던 회사를 퇴사하고 난 후에, 나에게 맞지도 않는 회계 자격증을 호기롭게 준비할 때였다. 이미 몇 년 동안 쌓인 야근과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 당시의 나는 몰랐다. 어차피 나는 평생에 걸쳐 허약했고 이번에도 별일 아닐 것이라고 내 몸을 소홀히 했다.
아예 전직하는 것을 생각했기에, 나에게 맞든 안 맞든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듯 내가 거기에 맞춰가면 되는 것이니. 그래서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하면 안 될 최악의 짓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토마토 마늘 스튜와 계란을 먹고 공부하려고 앉았는데, 생전 처음으로 위가 멈췄다는 느낌을 느껴봤다. 뒤이어 온몸이 속에서부터 간지럽다 못해, 나중에는 혈관이 따끔따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전에도 몸이 간지럽긴 했었지만, 몸이 따끔따끔한 것은 처음이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병인지 몰라서 유튜브를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고 장누수 증후군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질병은 몸을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몸의 기능적 이상 자체를 질병으로 판단하여 접근하는 기능의학 의사들이 붙인 병명이었다. 그렇기에 일반 병원에 가서 장누수 증후군이라고 이야기해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이쪽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에 찾아갔고, 나는 장누수 증후군과 음식 알레르기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더욱 청천벽력 같았던 것은 단순한 음식물 알레르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치로 찾을 수 없었고 따라서 원인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먹었을 때 몸이 따끔거리는 것은 다 먹지 말고 아예 끊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모범생인 나는 유튜브에서 긁어모은 지식과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따라, 거의 모든 음식을 끊었다. 모든 것이 두려워진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평소에 거들떠도 안 보던 현미밥, 연어, 미역, 버섯, 양배추, 생들기름과 소금이 다였다. 맵고 짠 것을 사랑하던 나의 식단과는 정 반대의 식단이었다. 하루에 4끼를 먹을 정도로 먹을 것을 좋아하던 나는 식사 시간이 역겨워졌다.
첫 달을 버티면서, 나는 마음속의 깊은 불안함을 애써 감추고 집행유예 망상으로 나를 달랬다. '3개월 안에는 낫겠지. 보통 장누수 증후군이 이렇게만 하면 6개월 정도면 낫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젊고 이렇게나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니까.' 라며 왠지 나는 빨리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2-3달 디톡스 한다고 생각하니 까짓 거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몇 달 뒤에는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몇 해 동안 쇠창살 없는 감옥에 고립되어 쑥과 마늘만 먹는 최악의 상황은 알지도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