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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16. 2022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서 정말 행복해!"

삶의 목적을 다시 돌아보다.

우리는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죠.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맨 마지막에 달성해야 할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그곳까지 가기 위해 계속해서
버텨내게 할 수 있는
'도구'로써 생각해야 합니다.

여느 때와 같은 지루한 오후, 우연히 보게 된 인지심리학 김경일 교수의 강의에서 들은 말이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실 찔렸기 때문이다.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린 후 나는 ‘빨리 나아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고통스러울수록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을 그리는 것으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희귀 알레르기가 다 나아서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사 교제를 하는 행복

마음껏 밖을 돌아다니는 행복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저축하는 행복,

가족들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행복


하지만 행복을 그릴 수록 나는 어쩐지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행복과 거리가 지구 반대편만큼 멀어 보이는 내 꼴을 금세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쑥대밭이 되어버리는 몸은 언제나 나의 인생의 목표를 좌절시켰고, 목표에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들이 전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마치 드라마에서 '몇 년 후'라는 자막이 나오면 그간의 일들은 모두 희미하게 생략되고 그저 보내버린 나날들이 되듯이.


'원래 내가 뭣 때문에 살았지? 내 인생의 이유가 뭐였지...?' 90살 먹은 노인처럼, 1년 만에 아득해져 버린 목표를 더듬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고 자신의 일을 다할 수 있게 기도하는 것. 힘든 사람들을 위로의 말로, 경제적으로, 실제적으로 돕는 것. 그들을 굳세게 하는 것.


아- 그랬었지!

이것이 대학생 때 확신을 얻은 후로 아프기 전까지 놓지 않았던 내 인생의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 내 인생이 버거워지니 이 모든 게 어느새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나 살기도 버거운데, 내가 제일 불행해 보이는데, 무슨 남을 위한 기도냐. 그럴 시간에 나나 챙기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나?’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본래의 목표가 떠난 자리에 대신 자리 잡아버린 행복이라는 녀석은 나를 수시로 목마르게 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더 힘들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불행하니까.


‘이제는 다시 돌이켜야 할 때구나.' 여러 감정이 섞인 뜨거운 눈물이 어느새 내 볼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행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놨는데, 만발한 메밀꽃밭처럼 나를 두르고 있는 새하얀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누군가를 일으키는 여정 중에 힘들지 말라고 이런 귀한 남편과 멋진 부모와 좋은 시댁을 주셨구나. 평안히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주셨구나. 보고 걸을 수 있는 신체를 주셨구나. 선선한 바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주셨구나! 이 정도면 충분한데! “


일상에서 나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들이 충분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받기도 했다. 내가 매일 기도하고 지지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수렁에서 헤어 나와 나에게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왔다.


“힘들 때 네가 기도해주고 그렇게 매일 붙잡아준 덕분에 지독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이제는 정말 달라질 거야. 정말 고마워”


“삶에 대해 모든 소망을 잃었던 순간에 나를 붙잡아준 것 잊지 않을게. 사실 너도 지금 홀로 아프고 외롭고 괴로웠을 텐데도 끝까지 사랑을 보여줘서 고마워.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텐데 이젠 정말 내가 좋아졌어. 상황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


내가 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살리고 있었다. 그저 의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이 나를 가득 채웠다.



성경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근데 이 말은 내가 바라는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의 앞 구절엔 사실 이런 말이 적혀있다. "내가 모든 형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으니, 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던 도중 어떤 상황을 만나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감사로 누린다는 의미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두지 않는다. 행복은 쫒는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기에. 그저 살아서, 내게 맡겨진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려고 한다. 언젠가 다시 그 짐이 무겁게 느껴진다 해도 이제는 안다. 그것이 사실은 나를 붙잡아준다는 것을.


그러는 와중에 조금 지칠 때면 다시 눈을 돌린다. 내 주위에 얼마나 소소한 행복들이 나를 응원하는지.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더 이상 눈물로 병이 낫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하루로 살지 않는다. 눈물을 닦고, 현실에 발을 내리고, 오늘도 기어코 ‘살아내는‘ 귀한 하루로 보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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