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죽이기
흔히들 사람이 어떤 큰 악재를 겪었을 때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한다. 난치병 때문에 하루 종일 홀로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나는 더욱 사무치게 사람이, 관심이 고팠었다. 아팠을 때 꽤나 나를 슬프게 하고 회의감이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인간관계'였다.
분명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긴 시간 홀로 있을 나를 찾아오지도,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며 생사를 확인하지도,
생각만큼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심한 배신감과 상실감, 슬픔이 몰려왔다.
'나라면 그들이 이렇게 되었을 때 반드시 찾아가고 계속해서 연락해줄 텐데.'
'내가 얼마나 외로울지 전혀 공감해주고 있지 않구나.'
'이때가 손절할 타이밍인가?'
칼 같은 프로 손절러의 기질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몇 번 조금 실망을 안겨주면 그것이 크게 생채기로 남는 사람이었다. 한번 상처를 받으면 카운트를 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바로 손절하는 프로 손절러였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 내가 이런 난치병에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라니! 내 상황을 묵상할수록 연탄불처럼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홀로 밥을 먹는 것이 적적해 틀었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보다가 밥을 씹는 것을 잊고 말았다. 선생님이 패널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많은 다수로부터, 어딜 가나 사랑받고 관심받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상담사라는 별명이 있고, 혼자만의 시간 갖는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의 고민과 속상함은 혼자 해결하는 모습에서 나는 내 존재의 이유가 아주 독립적인 성인처럼 '나'로부터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심각한 착각이었다.
어쩔 줄 모르는 당혹감에 일시정지 화면인 것처럼 나는 잠시 멈춰있었다. 나의 생명줄을 불특정 다수에게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임상심리를 공부하는 친한 친구 H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니까 너에게 '엘리스의 비합리적 신념'이 있는 것 같은데?" 하면서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알버트 엘리스의 비합리적 신념의 당위성 3가지]
1. 나는 모든 면에서 반드시 잘해야 하며,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항상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2. 타인은 나에게 항상 친절해야 하며 공정해야 한다.
3. 세상은 항상 고통 없고 모든 환경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충격이었다. 왜냐면 모든 리스트가 나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1. 학창 시절부터 어딜 가든 인기 있고 서로 함께하고 싶어 하고, 조금 실수해도 미움받지 않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렇게 부러웠다.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보였다.
2. 내가 남에게 진심 어린 친절함으로 대하는 만큼, 신경 쓰려 노력하는 만큼 나도 내 친구와 혹은 타인들에게 그렇게 대우받고 싶었다.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할 때면 속상하다가 나중엔 억울함까지 들었다.
3. 내가 처한 환경이 나에게 맞는 편안하고 행복한 상황이 아니면, 쉽게 큰 속상함을 느끼고 떨치기 어려웠다.
H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비합리적' 신념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나는 이 세 가지가 한마디 단어로 보였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매번 더 많이 아팠던 이유가,
아플 때 지인들에게 더 섭섭하고 속상했던 이유가
더욱 심한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는 이유가
자기 중심성 때문이었다니.
'내가 이런 식으로 잘하고, 앞으로도 잘할 거니까 마땅히 나도 똑같이 가치 있는 사람처럼 대해주고 사랑해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내 감정의 키를 무방비하게 타인에게 넘겨줘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 목메면서도 사실은 너무 힘들었었다. 비슷한 무게로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 아팠고, 새로운 집단에 가면 사랑받고 싶어서 항상 긴장했다. 자주 상처받는 것이 힘들었고, 나중엔 상처받는 내가 바보 같아 보였다.
'뜯어고치자.'
"나는 모든 면에서 반드시 잘할 수 없어.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항상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 때도 있어. 언제나 친절한 타인만 만날 수도 없고, 때론 내가 열심히 해도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게 원래 인생이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없어. 인정해야만 해."
일부러 스스로 들으라고 엘리스의 신념을 비틀어 소리 내서 읽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듯
나는 언제나 사랑받고 있어.
그리고 때론 내가 특별히 잘한 게 없는데
사랑받을 때도 있고,
열심히 한 것보다
더 성과가 좋을 때도 있잖아?
그러니 내 방식대로, 원하는 타이밍에
사랑받지 못해도,
때론 좀 대우받지 못해도 괜찮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하는 앨리스였던 내가 처음 굴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사랑받아야 하는 자아상과 당위성을 내려놓고 머리를 빼꼼 내미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1) 나도 누군가에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2) 관계에서 크게 기대하던 마음들이 사라졌다.
3)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쏟던 과한 에너지를 조절하게 되었다.
4) 받고 싶은 사랑을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5) 사람마다 저마다의 방식과 시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6) 사랑받기 위해 억지로 괜찮다 했던 것들은 괜찮지 않다고 가볍게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단칼에 손절하기보다, 관계라는 것이 긴 여정 중에 조금은 느슨해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또 좋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빚쟁이 같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멀리서 나를 찾아와 주고, 위로해주고 사랑을 표현해주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제 지독한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프로 손절러를 ‘은퇴하는 중’이다. 빈 시간들의 외로움과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은 당연히 나 스스로의 몫이 되었지만 오히려 자유해졌다. 내가 나를 돌봐주니 전보다 나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
어쩌면 추후의 나의 삶은 더 가볍고 평안할 것 같아 미소 짓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