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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24. 2022

눈치 보고 싶지 않아 운동을 시작했다.

"너는 한마디로 연비가 안 좋구나."


허구한 날 진이 빠져있는 나를 보며 우리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분명 삼시세끼 잘도 챙겨 먹는데 먹은 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말 찰떡같은 비유였다.


연체동물. 종이인형. 종합병원.


이 모든 것이 지난 30년간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잠들어도 쉽게 깨는 사람, 남들만큼 체력을 사용하면 두통이 오는 사람, 허구한 날 어딘가가 아픈 사람, 한 끼를 굶으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사람,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해서 아픈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일전에 유전자 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유전적으로 근육이 붙기 힘들고 운동을 하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져 남들보다 회복력이 느리다는 결과를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30년 만에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자율신경 실조증 치료를 위해 남편이 알아봐 준 한의원에 다닌 지 6개월. 정말 감사하게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큰 성과가 있었다. 어언 1년 6개월 만에 깨지 않고 5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었다.


하지만 음식 상태에 반응하는 희귀 알레르기도, 밥을 먹으면 중간에 걸리는 느낌도, 피부 표면이 간지러운 것도, 피곤해지면 온몸이 간지러운 것도 여전한 숙제였다. 본래 2-3개월을 예상했던 한약치료를 6개월이나 진행하고도 개선이 없자 한의원에서도 더 이상 한약을 권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남편이 권했다. "운동을 해보는 건 어때? 어차피 지금 쉽게 피곤해하고, 조금만 무리해도 알레르기가 올라오니까 아예 체력을 기르다 보면 몸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워낙 몸이 개복치라 그냥 헬스를 하다간 잘못된 자세와 무게로 병만 더 얻을까 봐 큰 맘먹고 1:1 필라테스를 끊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열정적인 타입이셨고, 하나하나 질문하는 스타일의 회원인 나를 좋아하셨다.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된 날, 선생님이 내 몸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흘리듯 하신 말에 나는 왜 꽂혔을까.


몸 전체적으로 코어에 힘이 없으세요.
모든 힘의 방향이 바깥으로 향해있으세요.
이걸 다 끌어모아서 코어로 힘이 들어가야
어떤 일을 하던지 몸이 덜 힘들어요.





선생님의 말이 꼭 아파서 바뀌기 전의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몸짓과 눈빛과 단어 선택 하나에도 사람의 기분과 나를 향한 태도를 예민하게 캐치했던 나.

하지만 쉽게 떨어지는 에너지를 지키느라 적당히 몸을 사렸던 나.

상대적으로 몸이 약하니 남들에게 나를 이해시켜야 했던 나.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했던 나.

이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던 날들.


한마디로 단단하지 못한 자아와, 따라주지 않는 몸을 갖고 온통 신경은 외부로 향해있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내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 여유를 갖고 남들을 배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유와 배려는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는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잠시 로그아웃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했던 것처럼, 내 몸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할 차례였다.


첫 수업이 끝나고, 내가 상담할 때 부탁드렸던 대로 숙제를 내주셨다. 당장이라도 모든 아령을 씹어먹을 것 같은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내게 선생님은 ‘이걸’하라고 하셨다. 바로 숨쉬기 운동이었다.


피 유욱- 살짝 김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체력이 좋아지려면 상식적으로 푸시업을 시키든 작은 아령이라도 들어서 뭘 하라고 하든 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숨쉬기 운동이라니…’


하지만 오만이었다. 횡격막 호흡 15번이 넘어가자 온몸에 땀이 났고, 30번을 다할 때쯤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동안 이런 몸으로 대체 뭘 하겠다고 한 거야…’ 얼마나 몸에 근육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약 3개월간 1:1PT를 받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집에서도 운동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척추와 골반의 정렬이 조금씩 맞아지니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목에서 걸리던 느낌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헤벌레 하고 벌려져 있던 갈비뼈와 아랫배의 정렬이 맞아지고 몸이 전체적으로 탄탄해지는 것이 보였다. 운동을 하니 잠에 드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처음으로 내 몸통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되었다. 밥 먹을 시간이 1시간 정도 지나도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온몸이 차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변화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말했다. “보통 주 2회로 이렇게 빨리 좋아지지 않는데, 다른 분들보다 열심히 하셔서 이렇게 빨리 호전되신 거예요! 정말 멋있어요.”


이 말을 듣고 참 기뻤다. 나의 태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극복해가는 내가 조금은 자랑스러워졌다.





그 이후로 5개월째, 나는 주 6일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운동 고자였던 내가, 운동 포비아였던 내가 운동 중독이 된 모습을 보고 내 주위 사람들은 항상 신기해한다.


비록 아직은 자율신경 실조증의 여파로 완벽히 호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제는 눈치 보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배려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앞으로의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은 덜고 나를 사랑하고 남을 존중하며 그렇게 살아갈 평범한 일상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다. 


장누수 증후군과 알레르기와 자율신경 실조증은 여전하고, 일을 하는 것도, 긴 여행을 하는 것도 어렵기에 상황이 많이 바뀐 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잿더미에 앉아있는 지금, 나는 이미 꽃을 피우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불행하고 평안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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