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2020년 10월 16일.
처음 병원에 가서 희귀 알레르기라고 진단받았던 그날은 첫 결혼기념일을 3일 앞둔 날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했던 식당도 데이트 일정도 모두 취소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저는 맨밥에 삶은 양배추와 연어, 남편은 고등어구이와 참치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내년에는 꼭 다 나아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렇게 지옥 같은 삶이 기다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 시간을 버티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 가장 지옥 같을 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더 이상 소망할 수 없을 때라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이미 죽어버린 느낌을 30년을 살면서 처음 느껴봤습니다.
3년째인 지금, 저는 아직 난치병과 함께 살고 있고 제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제 글은
"이제는 다 나아서 건강을 회복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일상도 회복했답니다.
지금은 아픔을 극복해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멋들어진 성공담이 아닙니다.
어느 독자님의 감상처럼 어쩌면 처절하게 바닥을 드러낸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 '병을 다 회복한 것도 아닌데, 누가 내 얘길 궁금해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더욱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엔 열매가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길고 긴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거센 폭풍을 만나 버텨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과 저 멀리 훨훨 날아가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초초해하고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폭풍을 정면으로 맞았지만 저 멀리 밀려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버텨준 것이 굉장한 것 아니냐고.
거기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간 것이 기적이라고.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으니 같이 버텨보자고.
그런 시간 속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입니다.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질병은 건강, 직업, 돈, 자유 등 많은 것을 앗아 갔지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덕분에 30년간 스스로 채웠던 수많은 족쇄와
어리석은 짓을 끊어낼 수 있었고
나 스스로를 조금 더 믿어줄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의 시간을 더 가볍고 현명하게 보내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믿기지 않게도 저는 '아프기 전의 나'보다 지금의 제가 훨씬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과거의 나를 더 이상 미련하다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생했다고, 앞으로는 더 잘해보자고 격려할 뿐입니다.
제 글의 제목을 '완벽하게 불행하고 행복한 인생'이 아닌 '완벽하게 불행하고 평안한 인생'이라고 지은 이유는 제가 얻은 선물들이 '행복'이라는 말과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삶이 더 이상 제 삶의 목표가 아닐뿐더러, 상황과 관계없이 모든 일에 평안한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 선물로 인해 앞으로도 겪게 될 수많은 상황을 대처하며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확신합니다.
요즘에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병을 얻고 많이 슬프고 힘들어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 기쁠 땐 잠깐이라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이
재고 따지기보다 기쁠 땐 마음껏 기뻐하시고 슬플 땐 쉬이 떨쳐내시길,
지치고 힘들 때 우연히라도 작은 온기들을 만나시길,
이미 주어진 행복을 찾는 안목이 생기시길,
끝까지 인생의 목표를 완주하시길,
그리고 항상 평안하시길 마음으로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