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여덟 [ 아이라고 부끄러움을 모를까요 ]

자존감은 유아기가 중요합니다.

by 고민베어 이소연


딸아이는 외삼촌을 참 좋아합니다. 가족 중에 제일 젊고, 가장 신나게 뛰어놀아주는 사람이니까요. 오랜만에 좋아하는 삼촌이 와서 알콩달콩 신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저녁시간,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서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반가운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다들 기분이 좋아 목소리가 커졌죠. 그 때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던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뽀로로 볼거야아~!”


남편이 다시 물어봅니다.


“그럼 밥 다 먹고 거실에 가서 텔레비전으로 볼까?”

“아니야아 여기서 볼거야아! 밥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볼거야아! 핸드포오온!”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핸드폰은 안돼! 밥 다 먹고 나서 텔레비전으로 보자.”

“핸드포오온!!!!으아아앙”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떼를 쓰자 삼촌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모두 함께 앉아있는 식탁 바로 옆에 아이를 세워놓고 벌을 줍니다.


“여기서 벽보고 서 있어!”


눈치채셨나요? 아이는 왜 갑자기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를까요?

아이는 좋아하는 외삼촌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밥을 먹기보다는 당연히 외삼촌과 더 놀고 싶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자리에서 어른들이 자기들끼리만 대화하며 웃고 있습니다. 아이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인데 말이죠. 당장 떼를 쓰면 혼날 것을 아니까 또 참았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샐쭉해있다가 마침내 대안을 찾아낸 것이 뽀로로 영상입니다. 관계중심적인 아이는 어떻게든 가족들이 있는 곳에 끼고 싶습니다. 그래서 식사자리에서 함께 앉아 영상이라도 보려고 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양보를 한 것이죠.


그런데 아빠가 밥을 다 먹고 혼자 거실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라고 합니다. 여태 꾹꾹 참았던 감정이 터져나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식구들과 식사하며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남편은 당연히 아이의 이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생떼를 쓴다고 생각했고, 아주 가까운 식구이니 식구들 앞에서 벌을 주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삼촌만 가끔 보는 사이이고, 나머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만나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삼촌, 그리고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을 서야하니 수치스럽고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어마어마한 소리를 지르며 울고 몸싸움을 합니다.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아빠는 계속해서 아이를 이기려고 합니다.

엄마가 끼어들 정신도 없습니다. 조용한 곳에 데리고 가서 해결하고 오라고 보내고 나서야 둘이 화해하고 함께 뽀로로를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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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아빠가 눈치없고 나쁜 사람으로 보이나요?

하지만 현실에서,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대화하면서 아이의 기분을 눈치빠르게 이해해줄 만큼 아이에게 집중해주는 어른은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가 왜 뽀로로를 보겠다고 했는지 이해하는 어른들도 많지 않겠지요.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한 것인데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수치심을 배우는 나이, 만 2세경의 아이에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벌을 주는 크나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남들 앞에서 혼난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지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혼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들이겠죠.



결과적으로 아이아빠와 아이는 화해하고 뽀로로를 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정말 기분이 풀려서 아까의 상황을 모두 잊었을까요? 이 짧은 하나의 상황은 아이에게 참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❶ 앞으로는 ‘속상한 순간이 와도 참고 기다리다 대안을 찾아내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❷ 좋아하는 삼촌 그리고 많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벌을 선 아이는 상처입고 자존감이 낮아지게 됩니다. 아빠가 벌을 세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이의 자존감은 현저히 낮아지겠죠. 앞으로 벌을 설 때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가슴 깊이 남아있을테니까요. 유아기의 강렬한 기억은 성인이 될 때까지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❸ 아빠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 아빠가 백번 신나게 놀아주면 이 기억이 지워질까요.




제가 했던 심리치료에서는 처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용하기도 하죠. ‘올바른 방식’으로 일관성있게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동안, 적절한 장소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처벌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처벌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앞뒤 상황과 아이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시간동안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혼을 낼 때 단순히 화난 감정만을 쏟아붓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본 저의 남동생 (외삼촌이죠)이 포효하듯 내뱉습니다. ‘어릴 때 사람들 앞에서 수도없이 혼나고 벌선 어린 시절 덕분에 내 자존감이 땅바닥에 있지’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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