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신을 맞아 처음 끓여본 미역국. 첫 칭찬은 ‘양’이었다.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줌 미역도 물에 담그면 산더미처럼 불어난다고 익히 듣긴 했지만 실전은 달랐다.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하고 담근 미역이 내 예상의 두 배로 불어났던 터였다.
우리 세대의 여느 아이들과 같이 음식 아까운 줄 알라는 가르침은 옛적부터 들었지만 가능한 완벽을 기하고 싶었다. 몰래 반을 건져내 꼭 짜내고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꽁꽁 묶어 숨겼다. 완전 범죄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스무 살 넘어 엄마를 위해 가까스로 첫 생신 미역국을 끓여드린 것이 어찌 보면 미안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래도 대견한 지 얼굴이 한껏 화색이었다. 한우도 아니고 조개도 아닌 두부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두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잘 먹기는 했지만 요리에는 문외한이었다. 고기보다 해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조개 미역국을 해보면 좋았겠지만 해감이라던지, 균 걱정이 없도록 완전히 익힌다던지 등등을 생각하면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다. 차선은 소고기였지만 당시에는 생고기를 만져본다는 것이 또 너무 생소한 경험이라 망치기 십상이라 판단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두부는 집 앞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었고 포장 비닐을 뜯고 물에 씻으면 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찌어찌 끓여낸 미역국에 정육면체 모양으로 하얀 두부를 썰어 넣었다. 그래도 미역만 덜렁 있지 않고 한 가지 부재료가 들어간 미역국이 완성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맛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 미역국은 ‘칵테일’에 비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한 가지 그릇에 담은 양념들이 제각각 다른 맛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장과 소금을 넣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여 초록색을 내듯 적당히 어우러지는 줄 알았다. 5 더하기 2가 7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넣은 국간장은 그 맛대로, 소금은 소금대로 물과 기름처럼 각자의 맛을 뽐냈고 나는 요리의 핵심인 ‘간’이 상당히 요상하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마법수프를 끓이는 마녀처럼 이걸 조금 더 넣었다가, 물을 부었다가, 저걸 조금 더 넣었다가, 언젠가 뭐든 설탕을 조금 넣으면 좀 낫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도 한 스푼 넣었다가 더 이상은 노력할수록 결과가 안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만두었다.
엄마는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다’며 맛있게 그릇을 비워 주었다. 아까운 음식을 내버린 것에 죄책감은 들었지만 아까 그 미역을 몰래 버려 이만큼만 만들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조개는 내게 다소 어려운 재료이고, 그나마 고기는 만질 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도 그나마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이것도 좀 해보고 저것도 좀 해봐서 알게 된 최신 지식이었다.
그러나 약간 상승한 요리 실력과 효심이 비례하지는 못했다. 지난번 남편과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성게 보말 미역국은 정말 맛있었고, 다 끓인 채로 얼려서 서울까지 배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꽤 꾸준히 시켜먹게 되었고 직장 생활에 지쳤다는 핑계로 우리 둘의 생일도 그 미역국으로 편히 보냈다.
‘우리 생일에도 그랬다’는 마음의 합리화 작업을 먼저 거친 뒤 올해 1월 엄마의 생신에도 마음 한편 불편함을 안은 채, 그러나 몸의 편함을 위해 그 미역국을 품에 안고 갔다. 7개월 임산부라 몸이 무겁다는 핑계도 한몫을 했다. 엄마가 우리를 먹이려 한껏 차린 엄마 생신상에 마음속 불편함은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처럼 자라났다.
최근에 엄마와 공원을 함께 걸으며 처음 끓인 그 미역국과 오늘날까지 숨겨왔던 진실을 털어놨다. 잠깐의 웃음과 함께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원래 그게 양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