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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파이 May 21. 2022

토요일 아침,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마신 ‘더치라떼’

그때 선물 받은 더치커피는 인생의 판도를 바꿨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엄청난 맛이었다.


현재의 남편이자 당시의 남자 친구가 회사에서 커피에 일가견이 있다는 선배가 내린 커피라며 한 손에 들어오는 더치커피 병을 건넸다. 커피머신에만 500만 원을 쓴 선배라고 했다.


그 전에는 내가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마실 기회가 있으면 마시고, 그저 쓴 아메리카노는 왜 마시는지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카페모카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병 위에 ‘예가체프’라고 적혀 있었던가, 에티오피아라고 함께 적혀 있었던가. 커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잘 이해하지도 못해서 기억도 옅게 남았다. 아무튼 받을 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선물이라니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져서 ‘콜드브루’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때는 더치커피라고 불렀으므로 우선 그렇게 적고 싶다.


20대 후반으로 달려가던 시기였다. 회사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부서를 옮기고 일면 나아지기도 했지만 업무의 특성상 다시 죽도록 힘들었던 때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매일 마음속으로 이 회사에서 계속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업무도 맞지 않았지만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부족한 잠으로 녹초가 된 몸을 매일 억지로 때려서 깨우는 것 같았다. 일어날 때마다 부정맥을 앓고 있는 처럼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허무했다.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물이 이렇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그저 지는 것이 싫고 욕심이 많았고,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됐을 때는 어른이 되어 나를 지킬 힘을 갖고 행복해지려면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애썼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손이 아파 죽겠으면서도 구름사다리를 끝까지 건너는 나를 보고 ‘악바리’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도 오전 6시 알람시계를 맞춰 놓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안되면 죽는다, 발을 헛디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외고에 진학했고 SKY에 입성했다. 그때 한시름을 놓았다.


그때 그러지 않았어야 했을까. 과외를 두 개씩 해가며 학점도 챙기고 대외활동도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나마 마음의 고삐를 늦추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입사와 직장 생활은 생각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왔던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병명을 하나 붙여 보자면 ‘행복 불감증’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최선을 다했더라면 또 다른 길이 열렸을 텐데 잃은 의욕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겨우 부끄러운 매일을 살아냈다.


그렇게 평일에 마침표를 찍고 한숨 자고 일어난 토요일 아침은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잠시 평소의 나를 잊고 내가 꿈꾸던 어른으로 살아보는 시간. 푹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여유를 가져보는 시간. 출근 시간을 도는 공전 궤도에서 가장 먼 곳에 머무르는 간.


더치커피의 등판은 그때 빛을 발했다. 오래된 주택이었던 거실 창문 옆에는 내가 과외비로 마련한 8만 9,000원짜리 실내 자전거를 직접 조립해 설치해 두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다이어트 용으로 샀으니 이미 그때 8~9년은 함께했던 자전거였다.  


선물 받은 더치커피를 아주 진하게 차가운 우유에 타고 실내 자전거에 앉았다. 아마 그전에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간단히 테스트를 거쳤을 것이고 내게는 아이스 더치라떼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유리잔이 전용잔이었다. 커피 우유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잘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한 손에 들고 토요일 아침 루틴인 실내 자전거를 돌렸다. 중간중간 가장 원하는 순간에 마시는 더치라떼는 실로 엄청난 맛이었다. 쌉싸름한 커피의 맛과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의 맛. 단순히 커피와 우유가 섞인 맛을 넘어선 전혀 새로운 맛.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당한 양의 휴가를 면접에 써가며 겨우 이직을 한 이후 어디도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깨달았지만 최소한 곧 터질 것 같은 심장과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두통과는 한 발짝 멀어졌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막막할 때, 유난히 힘든 날에는 몇 층 아래 카페에서 더치라떼를 사 오고 있다. 이제는 옛 직장보다 새 직장을 다닌 기간이 더 길어졌고, 몇 잔이었는지 세기 어려울 만큼 여러 번 더치라떼를 사 오긴 했다.


신혼집에 커피머신을 마련하고도 더치커피를 내릴 수 있는 기구를 들여놓았다. 소위 ‘로망’은 카페에 있는 나무 재질의 기구지만 도저히 위생적으로 관리할 자신이 없어 고르고 고른 끝에 대부분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기구를 선택했다. 이렇게 내린 커피로 집들이를 온 친구들에게 아이스 더치커피를 내놓았다.


“진짜 맛있다! 이 커피 진짜 맛있다!”

친구가 두 번이나 이렇게 말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남편의 예가체프 선배의 선물은 이렇게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내게 더치커피 기구가 있는 줄 몰랐던 친동생-동생에게는 커피 머신으로 내린 커피를 주었기 때문이다-의 선물로 얼마 후 유명한 카페 B사의 더치커피 기구가 하나 더 생겼다. 동생은 선물을 건네고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나, 예전에도 이렇게 예쁘게 살고 싶었을 텐데. 그렇지?”


맞아. 지금도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삶이 예전보다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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