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지 않아서 좋아요. 또 시켜 먹을게요.’
얼마 전 맛있게 시켜 먹었던 팥 찐빵 리뷰란에 적힌 댓글이었다. 꽤 많은 댓글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또 다른 댓글은 대략 이랬다.
‘제 입맛에는 약간 달았어요. 좀 덜 달면 더 좋겠어요.’
아니 대체 뭐가 달단 말인가. 나는 댓글을 보며 혹시라도 제조하시는 분이 찐빵을 이것보다 덜 달게 만들까봐 두려워졌다. 자꾸 이런 내용을 보다 보면 어느 날 설탕을 10g이라도 빼볼까 망설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달지 않아서 좋았다는 평에는 그나마 동의했다. 앞에 ‘지나치게’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단맛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찐빵은 어느 정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은은한 단맛이었고 에디슨과 같이 여러 수준의 단맛을 수도 없이 시험한 뒤 탄생한 결과물일 것이라 생각됐다. 자고로 팥 찐빵이라면 이만큼은 달아야 했다.
‘자꾸 마카롱 리뷰에 달지 않아 맛있다는 말 따위를 달아두니 마카롱이 진짜로 점점 안 달아지잖아. 안 단 걸 먹고 싶으면 왜 마카롱을 먹냐고. 캐스터네츠나 씹어 먹어.’
얼마 전 온라인에 돌던 이 짤에 너무도 공감하며 웃었다. 그렇다. 마카롱도 한국에 도착한 뒤 지속적으로 단맛을 잃을 위기에 처해 왔다.
이토록 ‘달지 않아서 좋아요’ 파가 상당한 대세가 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려 본 이유는 ‘많이 먹고 싶어서’였다. 흔히들 너무 달면 물린다고 하니까.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단 음식의 대표 격인 아이스크림을 한없이 떠먹어도 질린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고 대충 말하는 한 통 정도는 비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이 아주 와닿지는 않는다.
어쩌면 무의식에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자리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건강 정보가 넘치는 시대이고 지나친 당 섭취에 대한 경고를 수도 없이 듣고 있기 때문에 입에 단 음식이 자신도 모르게 거부감을 일으키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조금 더 인간이고 싶은 욕구일 수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능을 통제할 수 있다.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본능이기 때문에 달다고 그저 좋아하는 것이 맞나 하는 비판적인 관점이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단순히 정말 이 입맛이 주류이거나. 해외에 뿌리를 둔 많은 디저트들이 1.3 정도 달았다면 실제로 한국에서는 1 정도가 적정 선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문화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당도의 적정선이 다른 것 같기는 하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당시 뷔페 형식의 학생 식당에는 먹고 싶은 것이 넘쳤다. 초기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 중 컵케이크도 있었다.
먹을 만큼 먹은 어느 날, 누가 봐도 색소가 아니면 불가능한 선명한 보라색 크림을 올린 컵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파란색은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깔이라고 하고, 특별히 보라색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소위 말하는 ‘촉’으로 ‘엄청나게 단 크림이 틀림없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찰나의 시간 먹을까 말까 수백 번을 고민하다 맛이나 보자며 집어 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 컵케이크는 딱 한 입으로 끝이었다. 혀에 닿는 순간 머리가 핑 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단맛이었다.
미국에서 몇 번 사 먹은 과자들의 당도도 남달랐다. 응축된 단맛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보다 단 것을 좀 더 잘 먹던 어린 시절, 어딘가에 놀러 갔다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유리 케이스 안의 각설탕을 까서 먹고는 너무 맛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때라면 미국 과자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했을 것 같다.
가끔 접하게 되는 중동 지역 디저트도 엄청난 단맛을 자랑한다. 맛은 있지만 나도 리뷰를 달자면 조금만 덜 달게 해달라고 부탁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지역이나 문화권에 따라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최적의 당도에 차이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단맛이 너무 핍박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맛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단순하면서도, 행복해지는 데 대단히 도움이 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대학생 시절 친구가 말다툼을 한 뒤 화해의 제스처를 건네기 전 은빛 케이스에 든 색색의 마카롱을 먼저 쥐어준 적이 있다. 내 입에서도 곧 미안하다는 사과가 나왔고, 나눠 먹은 마카롱은 달콤했다.
예전에는 다들 왜 이렇게 먹방에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나도 애청자다. 얼마 전에는 좋아하는 유튜버가 단팥이 가득 든 찐빵에 버터까지 끼워 먹고, 삶은 팥에 연유까지 뿌려서 알차게 먹는 것을 보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단맛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