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집 안에 햇빛이 닿지 않는 오전 6시 55분. 빠르게 냉장고를 열고 전날 생각해 둔 아침 식사를 낚아채 가방에 넣는다. 셔틀버스를 놓치기 싫다면 얼른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서 7시 3분이 되기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 서야 한다.
그럼에도 잠시 고민하다가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아침에는 1~2분 준비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렇다고 아침 식사 메뉴에 대한 신중한 고민을 대충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날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는 10분가량의 소중한 휴식, 나를 위한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모니터 앞에 앉아, 내 자리라고는 하지만 누구든 쉽게 오고 가는 일터에서 편하고 느긋하게 무언가를 먹기는 쉽지 않다.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한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는데 아직도 특정한 한 가지 메뉴에 정착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한 메뉴를 고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의 시도는 대략 이랬다.
삶은 계란 2개.
전날 미리 삶아 두어 아침에 시간을 잡아먹을 일은 없다. 노른자의 고소한 맛이 며칠을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냉장고의 찬 기가 약간 빠진다. 그래도 좀 더 제대로 먹고 싶으면 탕비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계란을 까넣어 조금 데운다. 맛도 있지만 건강도 챙긴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소금을 챙겨가서 먹기가 다소 번거롭고 소금 없이 먹자니 아쉬울 때가 많다. 사무실이 조용할 때는 계란을 까려 탁 치는 소리조차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빵.
다음날 회사에서 먹겠다며 맛있는 빵을 사 오거나 주문하는 일은 설렌다. 평일 아침은 또 고된 하루를 보낼 나를 생각해 빵을 굉장히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버터 풍미가 가득해서 그 자체로 맛있는 빵, 단순한 베이글과 모닝빵, 크림치즈와 호두가 고소함을 더하는 빵, 단팥이 가득 든 빵, 바삭한 파이, 누군가가 탕비실에 기증한 토스터에 구워온 식빵, 타르트 등등.
빵을 워낙 좋아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 때문에 고정 아침 메뉴로 정하고 싶지만 왠지 매일 이렇게 먹는 것이 괜찮을까 건강 걱정을 하게 된다. 유럽 식사 빵처럼 건강한 것으로 먹자니 맛이 영 부족하다.
치즈.
아기 시절 앨범에도 치즈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엄마의 메모가 적혀 있다. 지금도 그 입맛에는 변함이 없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낱개 포장 미니 치즈를 2~3개 정도 넣어 와서 많이 먹었다. 브리 치즈를 가장 많이 먹었고 고다 치즈, 에담 치즈. 치즈 자체만 먹을 때도 많고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그 사이에 넣어 먹기도 했다. 유럽풍 아침 식사를 한다는 느낌을 미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고, 왠지 뼈 건강을 챙겼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마냥 많이 먹어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가 않았다. 미니 치즈를 한 번에 5개째 까먹으며 영양 성분을 확인했는데 내가 먹은 치즈들은 포화지방 함량이 놀랍도록 높았다. 그리고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을 깜박하면 미지근해지고, 달리의 그림처럼 흐물거리는 질감이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짜 먹는 죽.
짜 먹을 수 있는 달콤한 호박죽을 냉동실에 꽝꽝 얼려두고 꽤 오래 아침 식사로 먹었다. 단호박과 늙은 호박, 설탕이 아침을 기분 좋게 해주는 단맛을 냈다. 죽은 따뜻하게 먹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편하게 먹으려고 찾은 짜 먹는 죽을 굳이 다시 데워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약간 덜 녹아 슬러시 같은 상태로 먹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정말 배고플 때는 두 개를 한 번에 먹으며 뇌가 원하는 달콤함을 한껏 채웠다.
충분히 맛있었지만 역시 오래 먹으니 다소 질렸다.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는데 스테이크도 매일 먹으면 질릴 것이다. 설탕이 꽤 들어있다는 점도 한 번씩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 설탕에 신경 쓰면서 군것질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대놓고 먹는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사과.
어릴 때부터 워낙 사과를 좋아했다. 작은할아버지께서 과수원을 하셔서 소위 B급 상품들을 자루로 보내 주셨던 적이 많았다. 약간 크기가 작은 사과긴 했지만 한창 잘 먹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는 하루에 최대 10개까지 먹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빨간 사과도 좋고 연둣빛 아오리 사과도 정말 좋아한다. 달콤하고 아삭한 데에 사과보다 나은 것이 있을까.
사과를 잘라 포크까지 챙겨 오는 정성은 무리고, 깨끗이 씻은 사과를 통째로 가져오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속살보다 약간 질깃한 껍질도 씹는 맛이 있고, 베어 무는 순간 입 안을 채우는 달콤하고 상큼한 과즙도 좋다.
다만 조용한 아침 시간 아무도 말이 없을 때는 사과를 깨무는 소리와 와삭와삭 씹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 그래서 한 입이라도 빨리 다 먹길 바라는 때가 종종 있었다.
카페라떼.
아메리카노로 아침 식사를 때우는 경우도 많지만 굳이 카페라떼를 적은 이유는 그래도 우유가 섞여 좀 더 식사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따로 먹을 것을 챙겨 오지 못해도 그 자체만으로 조금은 든든하게 마실 수 있다. 쌉싸름한 커피의 맛과 우유의 고소함이 주는 맛이 하루를 시작할 힘을 준다. 조금씩 아껴 먹으면 오전 내내 스트레스 완화제 역할도 톡톡이 해준다. 따뜻하게 먹어도 좋고, 속 시원함이 필요할 때는 차갑게 먹는다.
다만 커피머신에서 카페라떼를 내리려면 출근 전에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고, 아침부터 위에 커피만 들이부으면 속 버린다는 말이 종종 떠올랐다.
이밖에도 시도해 본 메뉴가 적지 않다. 쑥향 가득한 쑥떡을 먹어 보기도 하고, 요거트를 떠먹기도 하고, 제품에 바로 우유만 부어서 먹을 수 있는 시리얼을 먹기도 하고, 삶은 병아리콩을 담아와 먹어 보기도 하고, 단호박이나 고구마를 챙겨 오기도 하고.
가장 싫은 아침 식사는 헐레벌떡 나오기 바빠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고 회사 탕비실에서 이 과자, 저 과자 가져와 대충 요기하는 것이다. 군것질로 먹을 때는 좋은데 아침 식사로 먹고 싶지는 않은 메뉴다. 또 마음에 먹구름이 많이 끼어있을 때는, 내가 일하면서 몸을 혹사시키느라 밥도 못 먹고 다닌다는 서러움과 회의가 치밀어 오르고 만다.
한 때는 아침 식사 고민에 빨리 딱 맞는 메뉴가 나타나서 편하게 그것만 챙겨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요즈음은 질릴 때 즈음 바꿔가면서 이것저것 경험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싶다. 이러다가 질리지도 않는 완벽한 메뉴를 찾으면 좋고, 아니면 또 자기 전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보며 다음날 아침 먹을 생각으로 출근할 힘을 얻어보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