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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16. 2023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

 SY에게,


 우리는 결국 우리로 묶일 수 없는 사이였던 것 같아요 이제야 와서야 저는 무작정 출발한 기차였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달리다 보면 종점이 있겠지 하며, 무작정 내달렸지요 그런데 종점을 지나고도 다시 돌아와 다시 출발하는 그런 티켓인 줄 누가 알았겠나요 그래도 후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요 당신은 너무 예뻤고, 달리면서 지나친 풍경들 또한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니까요 그 풍경들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리고 많이 생각했죠 치기 어려 섣부른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풋풋했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아쉬웠어요 처음 만났던 성수역부터 신촌을 지나서 잠실까지 그리고 뒤로 조금 돌아서 홍대까지 우리 같이 함께한 장소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이에요 장소가 사라지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는 어떤 한 시인의 말을 기억해요 그리고 당신의 눈웃음 가장 오래 간직할 기억 중에 하나가 될 거예요


 종종 아니 자주, 당신의 이름 끝자리를 읊조렸어요 영영, 저는 영원히 같은 수식을 믿지 않는데 왠지 영원에 기대어 마음을 어림잡아 불안정한 미래를 짐작해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여름보다는 겨울의 끝과 봄의 초입새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 겨울처럼 흰 퍼자켓과 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샛말갛게 부풀어 오른 당신의 양볼이 잘 어울렸어요 그 절기쯤에 우리는 신촌에 있기도 했고요


 우리는 생애에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요 더 이상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이번이 마지막 우리라고 쓸래요 우리를 마지막으로 상정하며 이 편지는 최후의 보루가 될 거예요 더 이상 눈에서 자란 물로 인해 그 해의 여름이 당신의 이름으로 변하는 오탈자는 없을 거예요


 이제는 편지를 적지 않으려고 노력할게요

 잘 지내요 그러나 제 마음에 유통기한을 언제로 정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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