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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Aug 16. 2023

너는 나에게 시인이 되지 말라고 그랬다

 말미암아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살아오던 장소가 바뀌었던 그해, 너의 앞에 서서 나는 날씨가 춥다며 손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너는 나에게 시인이 되지 말라고 그랬다


 영영 내가 시를 섬기며 살아갈 것 같다며, 불행으로 귀결되는 운명을 너는 걱정했다


 다만, 내가 걱정되던 건 너와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와 쌀을 안쳐놓았는지 혹은 저녁에 올라갈 찬거리를 걱정하는 그런 생활 같은 것

 보통의 스물은 분홍으로 난분분할 것이었으나, 너는 나에게 나의 스물은 보랏빛으로 멍든 마음이 가득해보이고 바다를 좋아하는 나라서 심해에 들어가 나오지 않을까봐 무섭다고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의 손을 잡으며, 그런 일이 있더라도 너와 함께라면 바다에 잠겨 죽어도 좋다고 말을 했고

 너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샛말갛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해, 시인이 되지 말라던 너의 말에도 불구하고 너와 함께라면 불행으로 귀결될 운명도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심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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