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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Oct 03. 2019

계속

첫 비행, 구름과 구름 사이

착륙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10시간이 넘도록 비행 중이었다. 이코노미석은 조금만 비스듬히 앉아도 무릎이 앞좌석 등받이를 밀었다. 하필 자리도 창가라 앉아있기 힘들다고 화장실에 가거나 복도를 걸으며 몸을 풀기도 눈치가 보였다. 몸을 비비 틀었다 졸기를 반복했다. 입국 심사가 복잡하면 어쩌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얼른 이탈리아 회화책을 펼쳤다. 도착해서 수화물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불안해지기 시작하니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답답함을 못 견뎌 잠든 승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창문 덮개를 올렸다. 비행기의 위아래로 가득한 구름은 쨍한 햇빛에 어둠 하나 없이 하얗게 빛났다. 난생처음 찬란이라는 말뜻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감히 사진에는 담기지도 않을 찬란함이었다.


여전히 엉덩이는 배겼고 다리는 불편했다. 문득 가방 속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일기를 쓰자고 가져온 것인데 경유하는 동안 왜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을까.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적었던 것 같다.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비행기가 착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썼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의 첫 비행은 아픈 엉덩이와 영원했으면 하는 불안과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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