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다른 지역으로 하지 않는 이상은 많은 경우가 결혼하기 전 날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한 날부터는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 비혼족이 늘어가는 요즘은 그 태세가 달라지고 있지만, 성인이 되었어도 정신적, 경제적, 물리적으로 독립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지 않는다.
반면 독일은 아비투어라고 하는 한국의 수능을 치르고 나면 이제 갓 열여덟의 친구들이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는 개강과 함께 학교 근처로 집을 구해서 나가고, 일을 시작한 친구들은 직장 근처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한다.
이번 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독일에 혼자 사는 그녀도 독일에 오지 않았더라면 혼자 살 기회를 갖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부모님께서 이뤄내신 아늑한 지붕 아래 따뜻한 식사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장을 보지 않아도 냉장고가 채워져 있는 삶, 입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만 잘 넣어두면 며칠 뒤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와 함께 내 방에 놓여 있는 삶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
때문에 내 독일인 친구들이 나에게 그들이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이유를 애써 설명했을 때 매우 흥미로웠다. 친구 뿐 아니라 지인을 포함한 꽤 적지 않은 내 독일인 인간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친구는 단 두 명 뿐이다. 이 중 한 친구도 얼마 전 여자친구와 함께 집을 구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였으니 이젠 정말 한 명 뿐.
이 친구들과 처음 친해졌을 때였다. 난 이제 갓 친분을 쌓기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으레 그러했듯 '어디 살아?' 라고 물었다. 나의 의도는 대체로 어느 동네에 사는지를 물어 다음 약속을 잡기 좋은 장소를 찾는 것이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중앙역 근처, 학교 근처, 기숙사촌 대신, '난 사실 조금 멀리 살아. 바로 옆 도시인데,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돼. 별로 멀지 않아. 아직 엄마와 살고 있긴 한데, 언젠가는 독립할 생각이긴 해. 내가 떠나면 엄마가 혼자 남게 될 테고, 학교도 멀지 않으니 꼭 급하게 독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라고 자신이 아직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말수가 적고 들어주는 타입의 이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낯설다.
최근에 독립한 또 다른 친구도 처음 만났을 때엔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내가 어디 사냐 물었을 때 왜 아직 부모님 댁에 살고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계속 집을 구하는 중이고 곧 독립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의 길고 긴 변명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이들에게는 아직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자신의 상황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굉장히 이른 나이에 부모님 집이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립한 친구들에게 왜 독립을 선택했는지 묻고 싶은데 말이다.
이렇게 스무 살 전후로 독립을 하는 문화 덕에 어떤 이들은 갑작스런 자유를 통제하지 못해 이십 대 초 중반에 엄청난 방황을 하기도 하고, 또 그러한 결과로 어떤 이들은 빠르게 어른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삼십 대에 되어서야 비로소 혼자 살게 되었고, 드디어 내 의식주를 내가 챙기고, 이 집의 가장이 나 자신인 삶을 살게 된 나로서는 만일 조금 더 일찍 독립했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독립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경제력일 것이다. 스무 살 전 후 부모님의 도움 없이 보증금이라는 목돈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설령 부모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할지라도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 위한 보증금은 전세고 월세고 간에 결코 적지 않다.
때문에 다음 이야기에서는 한국과 독일의 주거 형태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전체적인 부동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재주는 없기에 왜 독일에서는 한국에 비해 더 빠르게 독립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집중해서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출처 : 일코노미뉴스(http://www.1conomynews.co.kr)
* 현재 일코노미 뉴스에 독일에서 사는 삶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을 저의 브런치에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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