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혼자이지만 더 고요하게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자신과 단 둘만의 시간이 필요한 날. 오늘이 그렇다.
이런 날이면 집에 가는 길에 배추 서너 포기와 콜라비, 사과를 사서 집에 간다. 싱크대 위에 대충 야채들을 늘어 놓고 도마와 칼을 준비한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독일의 한가운데에서 김치를 담그는 날이다.
2014년 여름, 처음 독일에 왔을 때였다.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독일어를 하긴 했지만, der/des/dem/den 같은 정관사 변화표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자기 소개조차 할 줄 모르던 때였다. 그래도 유학 후기를 보니 다들 Hallo (할로, 안녕)와 Danke (당케, 고마워)만 할 줄 알고 시작했어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독일어는 저절로 늘어있더라고 하기에 나도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어학원을 찾았다.
하지만 가장 기초반임에도 수업 첫 날부터 독일어로 자기 소개를 시키는가 하면, 다들 이미 독일어로 숫자 정도는 알고 들어온 눈치였다. 소외감은 둘째치고, 당장 내일 수업에 가기 두려운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렀다.
회사도 이미 그만뒀고, 비행기표며 집세며 이래저래 이미 돈은 나갔는데,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의 매주 있던 단어 시험이며,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쪽지 시험이며, 6주의 코스가 끝나면 다가오는 레벨 테스트까지 모든 것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그 때 우연히 피클을 담갔다.
당시의 나는 요리 무식자였기에 주로 피자와 반조리 파스타, 냉동식품, 소세지 등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때문에 곁들여 먹을 상큼한 사이드 메뉴를 찾고 있었고, 그나마 피클이 가장 쉬워 보였다.
적양파, 콜라비, 오이, 양배추, 당근을 골고루 썰어서 피클을 담그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고요한 집 안에서 단단한 채소와 나, 단 둘이서 만들어내는 그 칼 소리의 하모니가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한국과 달리 습하지 않은 독일의 여름 날, 거리는 뜨거워도 집 안은 서늘하던 그 때. 활짝 연 창으로 가끔 들어오는 바람은 내 칼질에 흥을 부추겼다. 탁 탁 탁 탁 썰리는 소리와 그 순간 순간의 고요가 아이러니하게도 내 영혼을 쉬게 해줬다.
숙제가 많은 날에도, 시험이 다가와 마음이 불안할 때에도, 매 코스마다 꼭 있는 발표가 다가올 때에도 나는 피클을 담갔다. 그렇게 피클을 담그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때 쯤 나는 어학원 친구들에게 피클을 선물하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더 이상 줄 이가 없어졌던 때에 김치에 도전하게 됐다.
배추를 썰고, 무를 썰고, 독일 슈퍼에 무가 없는 날이면 콜라비를 사다 썰고, 마늘을 까고 있노라면 이 세상의 고요가 모두 내 것인 것만 같다.
침대에 누워 괜히 이런 저런 - 구체적이지도 않으면서 나를 짓누르는 - 애매한 생각에 빠져 원인 모를 심란함이 다가올 때면 물리적으로 혼자일지라도 더 혼자 있고 싶어진다. 이렇게 자신과의 시간을 더욱 온전하고 고요하게 갖고 싶을 때, 반복적인 단순 작업은 선물과도 같다.
내 손이 움직이고, 내 눈이 그것을 바라보고, 나의 뇌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 순간이 매우 평화롭다. 취미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즐기는 어떤 것. 나를 온전히 고요하게 해주는 어떤 것. 어느덧 어학원을 마쳤고, 학업도 거의 마쳐가는 지금 나는 또 다른 이유로 김치를 담근다.
혼자서 독립적이고 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혹은 살아 남는다는 것은 꽤 고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나를 편안하게 위로하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해 줄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값진 경험일 것이다.
출처 : 일코노미뉴스(http://www.1conomynews.co.kr)
* 현재 일코노미 뉴스에 독일에서 사는 삶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을 저의 브런치에도 남깁니다.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되고 있으니 최신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여담이지만 이 글은 어느 대학교 한국어학과의 수업용 문제지 지문에 편집되어 실리기도 하여 내게는 꽤 애틋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