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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Sep 01. 2021

계급이 되어버린 MBTI

괴물이 되어버린 심리검사

MBTI는 나의 구원이었다. 


MBTI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나에게 너는 틀리지 않다고, 다르다고 말해주었다. 같은 유형의 사람들의 유튜브 댓글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세상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소속감. 처음 느껴보는 안락한 소속감이었다. 나를 파악하자 타인을 알고 싶어 져 온갖 유형을 공부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MBTI를 물어보고, 나의 분석이 맞았는지를 파악하고, 만나고 느낀 점을 적어서 활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내 유형이 가진 부족한 부분은 메워서 단점을 보완하고자 노력했다. 처음 3년 전에 했던 검사는 INFP였는데 점차 나는 변해갔고 1년 반 전부터는 ENTJ로 굳어지게 되었다. 어둡고 내향적인 내가 싫었고 무계획적인 삶이 싫었다. 그런 모습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힘들었던 나는 억지로 모임에 나가서 부딪혔고, 무계획적으로 여행하던 나는 엑셀표를 만들어 시간대별로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멋진 모습으로 변한 내가 좋았다. 


MBTI는 나의 구원이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외향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가는 모임마다 'OO님이 있어 모임 분위기가 산다, 꼭 모임에 나와달라, 정말 말 잘한다'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ENTJ로 살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고 남들이 하나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동시에 몇 개씩 하면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결국 목표를 이뤄나가면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역시 ENTJ 다워'라고 칭찬해주었다. 나는 처음엔 으쓱해졌고 이제는 그것이 당연해졌다. 이제 MBTI를 말할 때 당당하게 ENTJ라고 얘기한다.


MBTI를 공개하는 순간은 마치 시험 채점표를 받는 날과 같다.


두근두근. 하나둘씩 자신의 MBTI를 말한다. 외향형들에게는 역시나, 라는 찬사가 내향형들에게도 역시나, 라는 안쓰러움이 동반된다. 우리 사회에서 내향형은 소극적이고, 어두컴컴하고, 속내를 알 수 없고, 자신감이 없다는 말로 대체된다. 내가 INFP라면 꼭 INFP '혹은 ENFP'라고 덧붙여야 한다. 나는 언제든지 외향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여야 한다. S와 N은 신경 쓰지 않지만, F와 T는 신경 쓰지 않지만, E와 I는 신경이 쓰인다.


외향형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거머쥔 E들은 더욱더 활발하게 되고, 내향형이라는 타이틀이 쥐어진 I들은 더욱더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 E들은 I에게 다가와 가끔 한마디 던진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분명히 MBTI를 얘기하기 전까지는 동등한 사람이었는데 MBTI를 공개한 순간부터 우리 사이엔 계급이 생겼다. 흔히 말하는 좋은 MBTI를 가진 이들은 안 좋은 MBTI를 가진 이들에게 편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MBTI 전에는 혈액형이 있었다. A형은 소극적이고 숫기 없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도무지 A형에게 좋은 점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부끄러움을 타고 내성적이면 '너 A형이지?'라는 말이 따라오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MBTI를 말하기 전에는, 혈액형을 말하기 전에는 모두가 평등했는데. 


이제는 MBTI를 묻지 않는다. 그 MBTI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ENTJ로 살면서 뿌듯함과 보이지 않는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우울감도 느꼈다. 언제나 ENTJ로만 살아야 했다. 남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때로는 독설을 날리며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나는 ENTJ라 원래 그래,라고 으쓱해야 했고 ENTJ이기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제로여야만 했다. 힘들어도 침대에 누워 빈둥거려서는 안 됐다. 그런 건 IXXP 나 하는 행동이니까. 


인간을 분석하고 도움을 주고자 만든 MBTI가 어느 순간 변질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MBTI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편견은 없다고 모든 MBTI는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차마 거짓을 말하지는 못하겠다. 어느 순간 MBTI에는 좋은 MBTI와 나쁜 MBTI가 생겨버렸고, MBTI별 궁합이 생겨서 자신과 안 맞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저 사람과는 원래 안 맞아, 라는 게으름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MBTI를 물어보지 않는다. 혹시라도 부족한 나의 편견이 그 속으로 스며들까 봐 타인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딜 가나 나오는 MBTI 얘기에 피로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짧은 영상인 유튜브가 대중화되면서 영화나 독서처럼 길게 집중을 가져야 하는 것들을 힘들어하게 된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에도 MBTI가 나오면서 긴 대화와 질문을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힘들어졌다. 


이제는 안다. 구원은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가 해야하는 것임을.

좋은 MBTI로 살기 위해 가면을 쓸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내향형이 나왔다고 고개 숙일 필요도 없고 무계획적인 성향이 나왔다는 것이 무책임의 변명이 되지도 않는다. 남이 만들어 준 선을 가지고 너무 쉽게 긋지 말고 나만의 선을 찾기 위해 조금 더 불편하게 살아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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