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브 Sep 14. 2021

심리상담을 시작하다

10년 지기 친구조차도 나를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어도, 회피형 유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내 삶은 아무 문제없이 흘러갔다. 삶은 즐거웠고 때론 우울한 때도 있었지만 그 시기만 버티고 나면 나름 괜찮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 공채로 취업했다. 인생이 우울할 정도로,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그렇게 힘들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우울증이 있다고 매일 우울한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 높다고 매일 행복한 것도 아니다. 회피형 인간이라고 매일 방구석에 앉아 사람을 피하는 것도 아니다. 카페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남들과 똑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성취를 느낀다.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은 뭐가 다른 건지. 


심리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회사에 입사하고 일 년이 지나서였다. 지나친 업무과다와 스트레스로 그나마 지켜왔던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 11시에 퇴근하고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삶이 이어졌고, 그나마도 출근해서는 괴롭힘에 시달렸다. 내놓고 바빠서 며칠간 먹지 못해 썩어버린 음식을 보고는 '아 저걸 먹으면 아파서 내일 출근 안 해도 되겠네?'라는 생각에 우걱우걱 음식을 넣고 있는 날 본 순간, 나는 내가 무너졌다는 걸 드디어 느끼게 되었다.


퇴사를 하면 되지 않냐,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면 그런 판단이 되지 않는다. 내가 퇴사를 해버리면 내 업무까지 껴안게 될 이들에게 받을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퇴사를 허락받기까지 거쳐야 할 수많은 면담과 그에 따른 모욕과 부끄러움. 나는 팀 이동을 3번이나 얘기했지만 조금만 버텨봐라, 모두가 힘들지 않느냐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손을 먼저 놓은 건 내 쪽이었다. 연애란 누군가를 보살펴주고 아껴주고 이해해주는 것인데 당시 내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만나면 짜증만 부렸고 데이트를 하다가 말에 집중을 못해 몇 번이나 무슨 말을 했는지 되물었다. 차라리 마음이 식었든,  바람을 피웠든, 딴 여자가 생겼든 뭔가 이유라도 있으면 그녀는 그렇게 눈물 흘리지 않았을 텐데 나는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이 마음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파서, 라는 답안지가 있었던가.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보고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같이 손을 잡자고 말할 때는 언제고 조금만 힘들어지니 손을 놓아버린다며 힐난했다. 다른 줄 알았는데 쟤는 역시나 저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이라는 건 어떤 상황과 순간이 와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약한 거니까. 악순환이 악순환을 만드는 구조속에서 점점 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원데이 클래스로 심리상담을 해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고 나는 홀리듯이 그곳에 가게 되었다. 노원 쪽에 있었는데 간단한 약식 심리검사와 사주까지 같이 해주는 곳이었다. 전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으나 금액이 부담되었는데 원데이 클래스는 저렴했다. 이렇게 가격 문턱을 낮춘 상담소가 아니었다면 절대 상담을 받아볼 엄두를 못냈을 것이다. 상담사분은 상담 결과를 보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조심스럽게 좀 더 큰 곳에서 심리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직원분과 포근한 상담실은 갈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집과 가까운 신도림의 한 심리상담센터에 가게 되었고, 첫 상담과 함께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상담사분께서 결과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언어능력은 평균 대비 월등히 높았으나 사고능력은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었다. 우울증이 오면 뇌의 특정 부분이 비활성화되어 사고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책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금방 했던 것도 까먹고, 깊은 사고가 안되었던 게 이유가 있었다.


상담은 포근한 의자에 앉아 진행되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 원장님은 이곳에서는 뭐든지 얘기해도 된다고 했다. 앞에는 휴지가 놓여있었다. 자기 얘기를 하면서 우는 분이 많다고 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었다. 얘기를 듣고 원장님은 내 마음속의 트라우마를 따라가 보자고 했다. 나는 곰곰히 어릴 적의 나에 대해 떠올렸다... 


 

                                                           (다음에 계속)



   

이전 01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