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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Oct 13. 2021

행복은 명품같은 사치

다시 우울감에 빠지다

지난 다섯 번의 심리상담을 통해 나는 우울함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핵심적인 것들을 배웠다. 그것은 첫째, 타인의 말과 행동에 내 감정과 생각을 투사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둘째, 내 사고의 프레임을 파악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해나가기였다.


이 두 가지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고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점차 긍정적으로 회복되어갔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누군가 인사만 해도 어떤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기에 어눌하고 무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단순한 인사말임을 깨닫고 밝게 마음을 담아서 인사할 수 있었다. 또한 내 행동을 계속 기록하면서 어느 부분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는지 파악하고 개선하고자 하니 사람들도 나를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지니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더 나아지기 위한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몸을 만들어 나갔고 운동 외에도 패션 등 외모 가꾸기, 독서, 인간관계 배우기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자신감이 생겨 소개팅도 몇 번 했고 그 사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생겼다. 여전히 내 마음속 그늘을 지우지 못해 인연으로 나아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나아질 무렵, 코로나가 터졌고 다시 모든 게 무너졌다. 당시 여행사에 다니던 나는 회사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휴가처럼 생각했던 휴직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이 다시 찾아왔다. 당시에는 언제 코로나가 종식될지 알 수가 없었기에, 1달씩 휴직을 연장했다. 4월, 5월, 6월이 지나면서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매일 흘러갔지만 코로나는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월급도 줄어들면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해야 하는 때가 왔다.


1달씩 휴직 연장을 하다 보니 언제 출근이 재개될지 몰라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매일매일 집에 누워서 기약 없이 하루를 보냈다. 요리를 취미로 하던 나는 어느새 배달음식으로 매끼를 때웠고, 책을 놓고 한동안 하지 않았던 게임을 시작했다. 운동을 버려두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나를 사랑했던 내가, 점차 나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여름을 넘어서며 점차 여행업 줄도산의 위기가 퍼지면서 우울감과 무력감은 더 심해졌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남한테 피해 안주고 열심히 살았던 내가, 이유도 모르는 일로 하루아침에 직장과 동료들을 잃어야 하는지?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 생겼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는 요즘 어때?'라는 걱정 섞인 말에도 그것이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의심은 의심을 불러왔고, 점차 대인기피증이 생겨났다.


친구들이 연락 오면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아 그들이 미워져서 자꾸 연락을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연락을 피하자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졌고, 줄어든 연락을 보며 나는 또 우울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앞뒤 맥락을 다 잘라내고 어느새 남은 건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연락하지 않는 관계일 뿐이었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 바닥까지 간 참에 진짜 친구를 알게 됐네, 라며 혼자 방구석에 앉아 카톡을 지우며 인간관계 정리를 했다.


혼술이 늘어났다. 혼술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푼다며 맥주 한 캔씩 마시던 것이 어느새 독주로 변했다. 위스키, 브랜디를 먹는 게 차라리 저렴하다는 핑계로 독주를 하나둘씩 꺼내들더니 완전히 만취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몇 달째 무너져가는 나를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정부지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불안감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나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만 같았고 모든 말들이 나를 돌려서 공격하는 말 같았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다시 터져 나온 것이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데 왜 화가 났는지 어디서 화가 났는지 알 수도 없는 감정이 계속되었다.   


모든 고민과 불안과 의문은 돌고 돌아 나에 대한 공격으로 귀결되었다. 왜 내가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어야 했는지, 잘 나가던 직장을 다니다가 한 순간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입장이 되어야 했는지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못났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석어서 굳이 잘할 수 있는 전공을 버리고 여행사를 택한 것이 잘못이었고,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필수 출근 인원에 포함되지 못해서 백수가 된 것이고, 내가 보잘것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그 결론은 하나로 이어졌다. '내가 없어져야 한다. 나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한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내 길고 긴 터널의 탈출구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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