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브 Oct 14. 2021

감정일기 쓰기

인생을 바꿔주는 키워드

감정일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코로나 이후 직장을 잃고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난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열심히 살아가야 할 동력을 상실했고, 세상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발버둥 쳐보고자 노력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우울함의 시작은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머릿속의 생각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유튜브에서 '감정일기'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단순히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 게 아니라 오늘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적는 일기였다. 감정일기를 적으면서 인생이 변했다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적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저런 건 다 사기야'라고 생각하고 버려두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도전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새로운 도전을 행동할 용기는 없었지만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정말 내 삶을 바꿔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계속 휘감았고 처음 영상을 본 지 한 달 뒤쯤에서야 나는 공책을 샀다. 그리고 처음에는 무슨 감정을 적어야 할지 몰라서 또 한 달을 그렇게 내버려 뒀다. 그렇게 공책을 내팽개쳐뒀던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어떤 감정을 적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 여자 친구에 대한 감정이었다. 당시 나는 헤어진 지 시간이 좀 흘렀으나 여전히 전 여자 친구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한 미련인지 아니면 붙잡고 싶은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고 일상생활에서 불현듯 강하게 머리를 쳤다. 그냥 해리포터에서 머릿속 기억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처럼, 내 고민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재회에 대한 감정인지 단순한 미련인 건지 이런 것들을 적다 보니 몇 페이지가 금방 적혔다. 한 발작 내딛기 시작하니 다음은 쉬웠다. 당시 다니던 학원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을 언제 느끼는지, 왜 느끼는지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만났을 때 왜 화가 났는지를 적어보았다. 그렇게 몇십 페이지가 금방 적혔다.


일기를 적을 때 원칙은 컴퓨터가 아닌 수기로 글을 적었다. 컴퓨터는 쉽게 썼다 지우기가 가능하여 글의 휘발성이 높기 때문이다. 손으로 적다 보면 좀 더 진중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현재 쓰고 있는 글들은 당시 감정일기에서 나를 분석하면서 얻은 통찰들을 대부분 적은 것이다.


글을 적다 보니 내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감정은 반복된다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불쾌한 감정에는 불쾌했던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한데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았던 태도를 보였던 어느 가을날,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왜 나는 화가 났을까? 아마 나는 차별받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차별받는 건 왜 화가 나는 일인 건가? 그것은 어릴 적 받았던 차별들로 인해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삶을 살면서 받았던 차별대우들을 쭉 적어보았다. 


반대로 즐겁고 행복한 감정에도 이유가 있다. 누군가가 '너는 참 멋지게 사는 것 같아'라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을 때 나는 하루 종일 뿌듯하고 긍정적인 기분을 느꼈다. 너는 멋져, 너는 잘 살아 라는 말에는 그 정도로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다. 멋지게 산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기분이 좋아졌는가? 그것은 아마 내 삶을 인정하고 받아준다는 의미인 것이고, 오랫동안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가 가지고 싶었던 삶의 태도였던 것이다.


감정의 근원과 패턴을 알게 되니 긍정적인 감정을 더 얻기 위해서 필요한 행위들 ( 자기 계발, 인정받기, 사회적 성취, 운동 등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은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행위들 ( 건강한 음식 먹기,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처음 사람들 보는 자리에서 두려움 줄이기 등등)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많이 났던 날을 조사해보니 전날 패스트푸드나 정크푸드를 먹은 날이 많았다. 어쩌면 그것이 연관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최대한 치킨, 피자, 햄버거, 탄산음료 등을 줄였다. 또한 처음 만나는 자리에 가면 이상하게 나는 계속 내가 보잘것없다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나는 계속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를 집어넣고는, 첫 모임 때마다 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컨트롤했다. 


감정일기를 적는 것만으로도 과연 삶이 바뀔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유튜브 영상에 대한 내 첫 의문이었다. 감정일기를 1년 가까이 써온 지금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개인적으로는 비싼 돈을 주고 갔던 심리 상담소에서 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벌어지던 감정만 적던 것이 나중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까지 내 삶의 전반적인 이야기들까지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감정일기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느끼는 감정의 패턴을 파악하고 앞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알면 두렵지 않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몰랐을 때 그 크고 무서웠던 것은 아는 순간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진다.


감정일기를 적으면서 점차 삶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 나는 나를 점점 더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새로운 취미를 배워보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를 기꺼이 내던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행동과 감정을 기록하고 고쳐나갔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도 기록하고 써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참 고달픈 삶이긴 한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구멍 난 독처럼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진짜 나'에 대한 갈증이었다. 내 진짜 모습은 뭘까? 언제 난 행복할까?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까? 그런 생각들은 도무지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 오래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난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한 심리연구소가 '페르소나'에 대해 상담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마침 코로나 기간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리를 찾기 위해 나는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이전 12화 행복은 명품같은 사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