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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Nov 10. 2022

엄마 냄새가 없는 부엌에서

독립 391일 차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부모님의 간섭이 괴로워 독립을 했지만, 혼자 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사람은 엄마다.



6평 남짓의 작은 자취방. 이 콩알만 한 방을 꾸려가는 게 뭐 이리 어려운 일인 걸까. 빨래한 옷을 갤 때, 꼭 하나씩 빠져있는 양말 한 켤레를 세탁기 천장에서 목격하거나, 불시에 떨어지는 생활용품은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다 쓴 후에야 알게 된다. 엄마는 그 많던 살림을 어찌 한 번을 빠트리지 않고 오랜 세월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자취방에 많은 것들이 나사 빠진 기계처럼 허술하기 이를 때 없지만 그중 제일은 부엌이다. 오랫동안 요리를 하지 않아 차게 식어버린 부엌. 부엌 한편에 가득 쌓여있는 플라스틱 잔재들만이 사람 사는 집임을, 그 사람이 먹고는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엄마의 냄새가 나지 않는 부엌에서 나는 종종 엄마에게 고백한다. 시험공부하는 딸이 배고프지 않도록 매일 밤 수프를 건네주던 엄마에게, 인턴 합격 후 첫 출근을 했던 날, 그 후 다시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정신없이 살았던 내게 꼬박 세끼를 든든하게 챙겨주던 엄마에게, 당신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날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겨울철이면 큰 솥 가득 곰국을 끓여주던 엄마의 정성을 그토록 가볍게 받아먹기만 했었다고.



엄마는 여전하다. 출가한 딸을 당신의 옆에 있는 것처럼 챙겨주신다. 무작정 귤이 먹고 싶다는 전화 한 통에 귤 한 박스를 보내 주거나 2~3달에 한 번씩은 심심하다는 핑계로 양손 가득 반찬을 싸들고 찾아온다. 반찬들 중엔, 그 전날 엄마와 전화를 하며 무심코 던진 음식들이 꼭 들어있다. 진미채, 콩자반, 소분된 불고기. 음식은 전부 갓 만들어진 것이며, 따뜻하다. 그동안 부모님이 드시던 것들을 덜어주는 게 아닌, 모두 나를 위해 만들어온 것들이다.



오늘은 엄마의 음식이 전부 떨어진 날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 상황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전화를 걸어왔다.


'딸아 잘 지내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엄마가 해줄 게 그것뿐이네.'



엄마가 보고 싶다. 5살 난 아이처럼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부모님 댁에 가야겠다. 엄마 냄새가 나는 따뜻한 집에서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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