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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May 28. 2020

발신인없는 택배







주문한 적 없는 택배가 도착했다. 경비 아저씨 손에 들린 상자엔 내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다. 바닥을 드러낸 통장 잔고로 전전긍긍하던 내게 소비가 가당키나 한가. 나는 절대 택배 주인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택배를 보낸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심지어 발신인 주소란엔 어느 것도 적혀있지 않다. 당황할 틈도 없이 손에 쥐어진 이 상자. 살짝 흔들어보니 '턱턱'하는 뭉툭한 소리가 손바닥으로 떨어지고, 촉감은 희한하다. 상자 밑바닥은 기분 나쁘게 축축했고, 재사용된 상자인지 여기저기 뜯긴 테이프 자국이 남아있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려면 상자를 뜯어야만 하는데, 하필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이 택배와 대치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상자를 앞에 앉혀두고 발신자 추적에 들어갔다. 이 꺼림찍한 상자는 어째서 상대의 주소도 쓰여있지 않고 보내진걸까. 과연 '선물일까 테러일까'하는 무시무시한 상상까지도. 살면서 누구를 미워할 만큼 싸운 적도 없고, 남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은 더욱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 아,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칭찬 스티커 50개를 전부 모으면 학용품을 받을 수 있었던 교내 이벤트 때문에 내 마음을 싼값에 판 적이 있다. 당시 동경의 대상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옆 반 선생님과 관계가 좋아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날도 그들은 화장실 옆 신발장에 기대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두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불현듯 옆 반 선생님이 나를 붙잡더니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만약 담임 선생님보다 자신이 더 좋다고 말하면 스티커 5개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벤트 참여자들의 경쟁이 치열해 그들의 선행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화장실 청소를 자원해도 대가는 겨우 스티커 1개였으니까. 그 순간, 옆에 있던 화장실이 어느 때 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풍겼고, 옆 반 선생님은 몹시도 아름다워 보였다. 아니 아름다워야만 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더 좋다고 답했다. ‘그냥 좋다’도 아니고 ‘당연히 더 좋다’니. 동경이 물욕 앞에서 굴복하던 순간이다. ‘스티커 5개에 선생님을 저버리다니!’라고 말하며 이마에 꿀밤을 준 담임 선생님은 웃고 있었지만, 실은 유혹에 넘어간 내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껴 치를 떨었던 게 분명해. 그때 내가 미피 필통에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면 오늘 이 익명의 택배를 받지 않았을까?


혹시, 범인은 선생님이신가요?


6학년 때는 너무 옛날인가 싶어 다시 택배 상자를 뜯어 보기로 한다. 커터칼로 상자 뚜껑을 푹푹 찌르는데 갑자기 4년 전에 만났던 전 남자친구가 떠오른다. 데이트에 항상 늦게 나왔던 그는 남이섬으로 여행가던 날에도 여지없이 지각했다. 내 손엔 이미 출발한 가평행 열차 탑승권 두 장과 직접 싼 3단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잠들었는데 자는 도중 ‘마침’ 충전기가 고장 나 전원이 꺼졌다, 그래서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고 변명하던 그에게 약지에 껴있던 커플 반지를 빼내어 던졌다.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로 붐볐던 기차역.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들 사이로 반지가 또르르 굴러갔다.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보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내 시야 아래로 스르르 떨어졌다.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이번엔 내가 놀랐다. 몹시 당황하여 생각할 틈도 없이 그를 일으켜 세웠고, 되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급하게 화해한 뒤 우린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 여행 내내 그는 환하게 웃었다. 남이섬 입구에서부터 드라마 <겨울연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슬픈 OST가 쩌렁쩌렁 울려 퍼져도 그는 웃었다. 도시락이 맛있다고 웃었고, 2인용 자전거를 처음 타본다고 또 웃었다. 혹시 그 웃음 뒤로 넌 복수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거니? 준비 시간이 늘 길었던 너니까, 4년간의 계획 끝에 오늘에서야 기어이 내게 이 무시무시한 상자를 보낸 거구나.


그래서 말인데 이 택배, 정말 네가 보냈니?


벌써 두 명의 발신인 후보가 떠올라 칼질을 멈춘다. 생각보다 적은 많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안에 든 것이 마음인지 미움인지, 추억인지 공포인지 열어보기 전까지 알 길이 없는 택배 상자. 이처럼 속내를 알지 못한 채 끊고 끊어진 관계는 얼마나 많았던 걸까. 인간관계에 대한 회한이 밀려오려는 찰나에 갈라진 상자 틈새에서 흙내가 올라온다. 가만있어보자. 흙이라니. 설마 땅에 묻은 걸 굳이 파내서 내게 보낸건가. 틈새에 코를 가까이 대고 좀 더 냄새를 맡아보니 다행히 피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장르가 스릴러로 변하려다 멈춘다. 더는 피할 수 없다. 상자 안에 든 것이 무엇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노라 마음먹고 뚜껑을 열어젖힌다.





습기를 먹어 축축해진 신문지 아래로 가지런히 쌓여있는 두릅 여섯 단. 밭에서 딴 후 곧장 상자에 넣은 것인지 줄기에 흙덩이가 군데군데 묻어있다. 들쭉날쭉 튀어나온 두릅 하나 없이 볏짚으로 깔끔하게 동여맨 여섯 묶음. 참빗으로 야무지게 빗어 묶은 여인의 머리처럼 정갈하다. 이리도 고운 자태의 두릅 여섯 단을 보낸 범인, 아니 발신인은 누구란 말인가. 두릅을 덮은 신문지를 훑는데 상단에 작게 쓰인 ‘경북일보’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친할머니.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이틀 전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온 엄마는 할머니의 요청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할머니께 곧장 핸드폰을 넘겼고, 어색한 안부 인사는 생략한 채 할머니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우르르 퍼부으셨다.


‘요새 뭐허고 살드나’

‘니는 숫자를 모리나!’

‘1234 모리나!’

‘할매 번호 알재, 할매는 건강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한테 효도하래이.’

‘밭일 바쁘니까 끊는대이.’


분명 통화를 요청한 건 할머니였는데 바빠서 먼저 끊는 것도 할머니다. 1분도 채 안 됐던 짧은 통화에 고작 ‘네’라는 대답 몇 번을 할 동안 할머니는 많은 것을 쏟아내셨다. 오래도록 연락이 없는 손녀의 근황을 궁금해하셨고, 종종 나와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숫자 안에 담으셨다. ‘밭일’은 할머니가 밭에서 키운 무언가를 내게 보낼 것이라는 명백한 암시였는데, 그 세밀함을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할머니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지만, 이번에도 할머니 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내 이름으로 두릅이 왔는데 친할머니가 보낸 거 맞지?”

“어머! 깜빡하고 있었어. 시골에서 가져온 물건이 많아서 차에서 짐 뺄 때 경비실 앞에 잠깐 놔뒀는데, 들고 온다는 걸 잊고 있었네. 경비 아저씨가 주셨지?”

“응, 근데 내 이름은 왜 적은 거야?”

“너 두릅 좋아하는 거 할머니가 잘 아시잖아. 다른 사람 말고 너 주라고 상자에다가 네 이름까지 쓰시더라.”

“할머니도 참, 요리는 어차피 엄마가 할 건데 내 이름은 왜….”


수신자를 콕 집어 보내온 상자와 마주하려니 고개가 숙여진다. 그동안 열어보지 못한 할머니의 마음은 몇 개일까. 거슬거슬한 두릅이 할머니의 손을 닮았다. 물기를 머금은 신문지의 비릿함과 흙냄새, 그리고 채소의 풋냄새는 항상 할머니 손에서 나던 냄새다. 할머니의 손 같은 두릅을 가득 움켜잡고 향을 맡아본다.


택배의 내용물 확인은 끝났다. 이제 마지막 일을 처리해야겠다. 택배 마무리는 상품 수령 처리가 아니겠는가. 오늘은 내가 먼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여전히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잘 외우고 있어 이렇게 연락을 드린다고. 할머니의 냄새가 가득한 두릅은 잘 받았으며, 두릅 기운을 받아 부디 나도 할머니께 좋은 소식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발신인없는택배 #택배상자 #에세이 #사연있는_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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