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니까 하는거지. 그냥 하는거지. 좋고 싫고가 어딨어. 굶고 살래?"
할머니는 매일같이 들로 나가셨다. 밭에 가서 함태기에 담아 가생이로 버린 돌은 언젠가 담장이 되었고 비가 오는 날에도 굳이 나가서 논두렁에 무성해진 침략자 풀들을 뽑아 내셨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홀로 무슨 생각을 하시며 그 오랜 세월 일만 하고 사셨을까.
모전자전 인지 아버지 역시 현재 그러한 삶을 사신다. 조금 더 나은건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나 역시도 그런 핏줄의 끝자락을 잡고 태어나 그런지 일은 그냥 일이었다. 일이니까 하는거지. 하다 보면 느는거지. 결국 일이란 건 똑같은 일의 반복이 아니던가. 성실하게 하기만 하면 편해질 날이 오겠지. 그 이상이 되면 돈도 좀 만지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는 건 문제되지 않았다. 실제로 10년간 특별한 사유 없이 결근은 물론 지각 조차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했을 거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열이 펄펄 끓어도 일단 출근 해서 골골 대며 일 하다 조퇴 한 적은 있어도. 이 정도면 꽤나 성실하게 일 했는데도 내 실력이 발전했다는걸 느낄 수가 없었다.
재능이 필요한 영역인가? 내 노력이 부족한가? 어떻게 몇 년을 해도 똑같이 힘들까? 매일 상어 아가리 속으로 출근하는 이 기분은 언제쯤 사라질까. 내 마음은 언제 평안해 질까.
자격증 공부를 할까. 다른 회사로 가 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너무 고여 있었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유일한 직원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의리 있다고 했지만 아니었다. 나야말로 떠나고 싶었지만 이때껏 이 일에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고 분해서 남아 있었던 것 뿐. 그런 나의 염증은 독이 되어 온 머리속을 해집고 다녔고 병이 되어서 자신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감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온 주위로 쏟아내는 스스로의 악의에 매몰되어 버리니 그 다음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제대로 일 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거였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충청도 그 중에서도 둘째 가면 서럽다는 우리 아버지의 아들인 내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멘틀까지 내려갈 기세였다고 확언한다.
3류 영화만큼 진부하고 괴로운 시간을 몇 년이나 견디고 깨닫게 된 사실이 내가 이 일을 존나게 못해서 힘든 거라니 헛움이 나온다. 그럼 정말로 그냥 때려 치우고 나가 버릴까? 뭘 해도 내 한 몸 건사할 만큼은 일할 수 있잖아. 나 성실하잖아. 나 근면하잖아. 나 정직하잖아. 이렇게 일을 못 하는데 10년이나 여기 있을 만큼은 하잖아.
아니다. 아니었다.
도망 갈 때 가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정말 딱 한 번만 저 사람 일 진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업계 최고 같은건 바라지 않는다. 어쩌다 나를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게 돈을 주는 사람이 나 없으면 어떻게 사냐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주변 사람들이 나랑 같이 일 하고 싶어서 안부전화를 종종 걸어서 자기 존재를 어필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실력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연습? 관찰? 공부? 강의? 자격증?
아니아니 그런거 말고.
나 한 번 이 일을 좋아해 보려고.
너무너무 좋아지게 되 보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일단 썼다. 난 이일을 좋아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