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년 May 30. 2021

생이 충만한 이의 푸념

한달째 없이 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딱히 불만은 없다.


오히려 일 한 만큼 버는 업인지라 감사할 일이겠다. 열심히였고 그만큼 벌 것이며 다음달은 조금 뚱뚱해진 지갑만큼 나도 뚱뚱해 지겠지


그러나 나는, 태생적으로 게으르다. 핏줄 탓인지 바삐 돌아가는 세상따위 안중에도 없이 느리고 느리게 사는 것을 즐기던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더욱..


그러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사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 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기듯 하루하루를 사는것은 고역이다. 느긋하게 마시는 소주 한 잔, 카페에서 꾸벅꾸벅 졸며 하는 독서, 심심하면 접속해서 소일하던 게임도 할 수가 없다. 행복을 사기위해 하는 돈벌이 때문에 행복 할 수 없는 아이러니.


몇년 전, 한창 바쁘던 시절에 여자친구의 생일을 놓친 적이 있었다. 바빠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고 선물도 미리 건넸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당일이 와서 얼굴을 안보여주니 그간 서운했던 감정이 터졌는지 그녀는 피곤해서 잘 거라는 내게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했다.


???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 아니 내가 딴 짓 하느라고 못 간것도 아니고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건데 이걸 몰라준다고? 우리가 3년을 만났고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인데 이걸 못 참아준다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거절도 못하는 성격이라 남의 일까지 떠맡아 하기 일쑤인 남자와의 미래가 뻔히 보였겠지. 30대 중반을 넘어서야 어렴풋이 나를 알게 된  나보다 더 빠르게 나를 파악한..참 똑똑했다. 잘 헤어졌어 아주..내가 사라진 인생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빈다.


'아니 대체 왜 이러고 사는거지.'


팔자소관인가 성격 때문인가..아니면 어디 마가 끼였는가..별에별 생각이 다 들어서 심란한 참에 한 유튜버가 긴 투병생활 끝에 숨을 거두었단 소식을 접했다. 혈액암 투병을 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아름답기 까지 했던 여성 유튜버였는데 그를 보며 참 대단하단 생각을 숱하게 했던 것 같다. 나라면 모든 것을 접고 세상의 부당과 매정함에 이를 갈고 저주하며 죽어갔을 텐데..저 어린 사람이 저렇게도 당차게 살았구나.


자신의 일을 좋아해 더욱 프로다워 보이고 매 순간이 즐거워 보이는 저 얼굴..심지어 시한부의 고통스럽고 무서운 시간을 끝끝내 자신으로 채워가던 그 용기.


사는 것을 핑계삼아 다른 모든것을 체념하듯 살고 있는 나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아름다운 불꽃이 오늘 꺼진 것이다.


돌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의미없는 생이 그렇지 않은 당신보다 더 질긴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사실, 죽음 자체에 큰 의미부여는 필요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생명이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을테고 그게 내가 아닐 뿐,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추면 끝인것이 생명의 진실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단지 그 순간이 내일일지 내년일지 50년 후가 될 지 모르기에 남은 시간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고 견디는 것 뿐이라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내 삶을 들여다보면서 살고 싶었지만 목구멍은 포도청이고 돈 들어갈 곳은 막아도 막아도 끊임없이 생성되는 블랙홀 같은지라. 그러나 오늘 한 번 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했어야 할 사람과 등을 돌리면서까지 이렇게 살 이유가 있는지.

소중한 인연을 기피할 정도로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도 되는지.

마지막 순간, 웃으며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쫓기듯 살고 있다.

다른 의미로 나는,

언제 멈출지 모를 여생을 무의미하게 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같혀 하루하루를 디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신묘한 인생사..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맞바꾼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