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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Jan 17. 2022

하찮은 불행

 무거운 머리를 힘겹게 들어올리고 출근을 준비한다. 얼음장 처럼 차가운 차 안에 들어앉아 시동을 걸고 아직은 어두운 아침길을 달려 현장으로 간다. 이상하리만치 일만 하면, 3천배는 느려지는 시간의 등을 떠밀고 채근하다보니 지쳐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온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미동조차 없는, 그런 하루였다. 


 그 긴긴 하루가 내 뒤에 남았고 앞으로 또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릴 수 없고 그래서 너무나 고통 스럽지만 어디의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나의 하찮은 불행이다. 


 벅찬 감동으로 가득찬 하루는 언제쯤 오는 것일까. 발 뒷꿈치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오는 짜릿한 전율은 어떻게 느끼는 것일까.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희열은, 만면에 가득한 웃음과 손을 맞잡고 나눌 수 있는 슬픔은 또 어떤 느낌일까.  


 이는 내게 아주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봉당의 표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인생에 끼어들어 언젠가는 마음을 구멍을 숭 뚫어버릴 터다. 그걸 알면서도 이 불행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이 불행이 너무도 하찮기 때문이다. 언제고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앞으로 한 발 나아가지도 뒤로 한 발 물러서지도 않는 것인가.


 공교롭게도 이 불행이 나를 살게 한다.

 일어나기 싫은 새벽, 움직이기 싫은 추위, 코를 괴롭히는 콘크리트 냄새, 더러운 옷, 먼지가 부옇게 내려앉은 머리와 거칠어진 손과 때가 잔뜩 낀 손톱 아래와 오늘까지 반복된 이 지겹고 재미없고 괴로운 일들이 어김없이 반복될거란 사실과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거부하거나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은채 아니, 기꺼이 같은 내일을 맞이하러 갈 참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일탈이나 변화조차 거부할 지경에 이르러 버린 하찮은 나이기에 불행마저 하찮아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무수히 많은, 행복에 겨운 내일을 꿈꾸던 숱한 어제의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단 하루, 하찮은 불행을 잔뜩 머금은 반복될 오늘뿐이다.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네가 그렇게 하찮게 쓰고 버린 오늘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고. 아니다. 틀렸다. 비록 하찮을지는 몰라도 나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주어진 하루를 썼다고 자부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득 채우 하루였다. 어제도 그랬고 지난주에도 그랬으며 지난달에도 그러 하였다. 슬픈것은 다만, 그것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 삶의 도달점이라 치자면 누군가는 내내 행복하고 누군가는 불행을 딛고 행복해 지고 누군가는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장렬히 스러진다.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이냐 물어온다면 나는 단호히 셋 다 성공한 인생이라 말 하고 싶다. 어째서 행복에 이르지 못한 이의 삶이 성공이냐?


 그는 최소한 행복하려 했고 마음먹은대로 움직이는 삶이었으니까. 


 그렇다. 이 작고 하찮은 불행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해보려 하지 않느니 행복에 다다르는 미로 안에서 길을 잃고 막대한 불행을 짊어지는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꿈이 있었다. 꿈을 안게 되면 동시에 시련이 찾아온다. 그러나 어째서 꿈은 멀고 먼 미래에 자리를 잡고 시련은 가까운 내일 찾아오는 것일까. 왜 내게는 성난 파도와 끝없이 높은 장벽의 시련이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내가 저 파도와 벽을 넘어보려 버둥거리다가 넘어질 대로 넘어져 까진 무릎과 빠진 발톱 때문에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일까. 


 복에 겨운 소리.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 별 일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인 거. 쓸 데 없는 걱정. 가치 없는 고민.


내게 기생해서 나를 좀 먹고 있는 그러나 나를 살게 하는 하찮은 불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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