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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Dec 12. 2021

그리운 것들

유아기 편

대개 그렇듯 바둑이란 이름을 가진 내 생의 첫 강아지..

친구하나 없던 산골집 안마당, 사돈에 팔촌 누구누구 어른이 우리 장손 타라고 사주었다던 세발 자전거를 깔아놓고 답답해 하는 강아지를 굳이 끌어안아다 뒷자리에 앉혀놓고  진흙탕에 빠져 구르지도 않는 바퀴에 붙은 페달을 땀나도록 밟아대던 그 순간.


서낭당에 올라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우리집 굴뚝 위로 솟아오르는 흰 연기

주인이 하나뿐인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던 눈밭

젖어버린 장작이 타면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던 물거품과 매캐한 냄새

할머니가 들고 계시던 불에 익어 벌겋게 달아오른 부지깽이 끝,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 그걸 지켜보는 나..


난생 처음 타보는 경운기의 굉음

얼어있는 논 위를 달리던 썰매

뒷집 형들이 날리는 방패연

쌕쌕거리며 돌아가던 쥐불놀이 깡통

그리고 그걸 만들수도 만들어 줄 사람도 없는 나

아..야속한 아버지..


첫 불장난

그 불장난에 홀라당 타버린 논 한 마지기

소리치는 아버지의 손에서 건들거리는 삽자루의 대상은 아마 나였겠지 

그리고 날 들쳐안고 아버지의 으름장을 요리조리 피하는 막내고모

아..나는 5살 막내고모는 23살 우리 아부진 41살.. 18살 터울 세남매부자간의 숨막히는 추격전


할머니의 기증떡, 약과, 강냉이..

할머니가 구워주신 고등어. 화로위에서 구워지는 김 타는 냄새. 두부 지지는 소리.

한 여름 입맛을 살려주는 풋고추와 새우젓..물에 말은 밥. 한밤중에 먹었던 구운 고구마..


올라가지도 못할만큼 커다란 쌀독에서 나는 달큼한 햅쌀냄새와 거뭇거뭇한 쌀벌레들

그 옆 다락에 들어가있는, 나는 꺼낼 수 없는 삼춘의 종합선물세트상자. 

나는 안먹었는데 항상 사라지는 연양갱.

비도 오지 않는 날에 억지로 신었던 새로 산 노란 장화와 멜빵바지를 입고 

노랗게 핀 바깥마당의 개나리나무 앞에서 한복입은 할머니와 함께 찍힌 사진.



언제나 옳았던 일용할 간식들..

가재. 개구리. 메뚜기. 미꾸라지. 중투라지. 


건너집엔 사과과수원 중툿말엔 참외밭 아랫말엔 수박밭 뒷마당엔 딸기밭 담장앞엔 감나무 세그루 

샘에는 살구나무 안마당엔 앵두 바깥마당엔 배나무 화장실 옆엔 오동나무..


다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잃어버렸거나 사라져버린 나의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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