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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Feb 24. 2022

뒤늦은 변명

 이른 바, 나는 꽤나 낭만에 젖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현실의 차가움 따위는 알지도 못했고 안중에도 없을 무렵부터 인생을 관통하는 최고 최후의 주제는 결국 사랑이라고 단정지었을 만큼 어리석었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설레임조차 신중하게 생각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치 않는 "영원불변의 맹목"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할 수 없는 진리, 변질되어선 안되는 것,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한 것.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까지도 놓지 말아야 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랬어야 했는데..


 짓눌리고 말았습니다. 

 열화와 같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마음이 조금 차분해 졌을 때,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이 열렬한 고백에서 잔잔한 물결이 되었을 때, 눈 앞의 당신을 바라보던 내가 비로소 우리의 앞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문득 나는, 밀려들어 오는,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책임이 버거워 졌습니다. 낭만이라는 말랑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맞닿은 세상은 서슬퍼런 칼날 같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내가 찔리고 베이는 것도 무서웠으나 나의 부주의, 나의 무능력 때문에 그 뾰족하고 차가운 것들이 당신에게 향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속으로 뛰어들겠노라고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그래서, 그럼에도 내가 그것들을 막아낼 수 없다면, 그래서 당신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켜 버린다면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빛나는 당신이, 보잘것 없는 내 속에 들어앉아 형형히 빛나는 그 순간들을 차마 내보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두고두고 심장을 후벼파는 비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그저 잠시 지쳤을 뿐인 당신의 투정에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것이

도망치듯 떠나온 내게 들러붙어 버린듯 합니다.


때론 안도가 되어

때론 미련이 되어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울리고 그러나 더러 웃게 하고 그럽니다. 대부분은 독한 후회와 아픔으로 남아버리긴 하지만요. 


그러나, 그럼에도 구태여 털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 조각나 버린 마음이야말로 이번생에 주어진

내 몫의 사랑일까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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