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귀갓길의 지하철은 소위 말하는 서울의 ‘지옥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인산인해를 이뤘다. 중간에 환승 게이트를 지나는 사이에 어깨를 부딪치며 사과도 없이 지나쳐 가는 진상도 있었다. ‘어휴, 너무 불쾌하다. 어서 집에 가고 싶어.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집 근처 역에 내린 윤영은 현진건 작가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 마냥 집을 향해 잰걸음으로 갔다. 머지않아 코너를 돌아 시야에 집이 들어왔고 바로 옆 전봇대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위아래로 검은 옷을 맞춰 입은 남자가 보였다.
윤영은 그 남자가 괜히 신경 쓰였다. ‘뭐야, 기분 나쁘게.’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대화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상대는 애인인 듯했다. ‘영 이상한 놈은 아닌가 보다.’ 윤영은 고슴도치 마냥 바짝 세웠던 경계심을 풀고 대문을 지나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습관적으로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고된 객지 생활을 이겨낸 하루 끝에 들어선 자취방은 윤영에게 집 이상의 의미였다. 가구부터 침구며 인테리어 소품에 디퓨저까지 그녀의 취향으로 가득한 이 공간은 그녀에게 휴식처이자 재충전의 장소, 위로의 공간이었다. “오늘도 수고했다. 윤영아!” 가끔 혼잣말로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다.
좋아하는 바디워시로 따뜻한 물에 샤워하니 기분 좋은 안정감이 찾아왔다. 이어서 머리를 말리고 바디 크림을 바르고 메모리폼 매트리스에 몸을 던졌다. ‘이거지, 아 정말 여기가 천국이다.’ 휴대전화를 켜 다음날 알람이 제대로 맞춰졌나 확인을 한 후 신나게 웹서핑을 했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도저히 잠을 안 깰 수 없는 찢어질 듯한 굉음의 록 음악 소리와 함께 윤영은 새로운 오늘을 맞이했다. 출근도 안 했는데 벌써 퇴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육신이 무겁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손을 뻗어 열어보니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허, 하늘이 아니라 내가 울고 싶다.” 새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그녀의 집에는 우산이 없었다. 이사하기 전 낡은 잡동사니들은 모조리 버렸기 때문이다. 버튼이 고장 나 우산을 감는 똑딱이만으로 겨우 여밀 수 있는 고물 우산이 아쉽긴 처음이었다. ‘집 근처 편의점에 달려가서 사는 수밖에는 없겠군.’ 출근 준비를 끝내고 현관문을 나섰다. 순간 툭 하고 무언가가 발에 차였다.
소리를 따라 눈길을 멈춘 윤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우산이었다. 심지어 우산의 색깔은 윤영이 가장 좋아하는 연보라색이었다. 께름칙했다. 주택 2층에 사는 그녀의 현관문 앞에 우산이 우연히 떨어져 있을 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