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도마뱀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끼 Oct 23. 2021

현관문 앞 연보라색 우산

#3




순간 그녀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욕지기가 올라왔다. ‘미친 거 아냐?’ 지방에서 상경해 주택 2층에 혼자 사는 여자의 집 앞에 놓인 취향에 맞춘 우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불편한 호의다. 아니 이건 호의가 아니었다.


‘이게 바로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스토킹이 아닐까?’란 합리적 의심을 도출해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만약 스토킹이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시작한 걸까. 손이 떨렸다. 불안감이 엄습하며 무겁게 윤영을 짓눌렀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곧 시야가 아득해지면서 현기증마저 나는 것 같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미친놈아, 너한테는 로맨스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호러다. 내로남호.’ 얼핏 들었을 때는 웃긴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전혀 재밌지 않았다.


평범했던 윤영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순한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문 앞에 의도해서 놓아둔 연보라색 우산만으로도 많은 단서를 남겼다.


첫째, 우산을 놓고 간 사람은 윤영의 아주 사소한 취향까지 상세히 알고 있다. (그녀는 좋아하는 색을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이 없음으로)

둘째, 우산이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거로 미루어 보건대 스토커는 이사 오기 전의 집에서부터 윤영을 지켜봐 왔다. 혹은 심한 경우 현재의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셋째, 우산을 현관문 앞에 놓아둠으로 윤영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이래서 공황장애에 걸리는 건가.’ 심지어 매체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도 개인적인 취향이나 거주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적이 없었다. 심상치가 않았다. 이 부분은 그저 적당히 들어맞은 것이길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영은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나한테 일어날 리 없어. 늘 그랬듯이 출근해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매사에 낙관적인 그녀는 불행이 엄습해 올 때면 언제나 외면하는 입장을 취했다. 긴장해서인지 이젠 엉덩이 부근마저 욱신거리며 통증이 몰려왔다.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안 그러면 지각을 면치 못할 것이고, 우연한 일 때문에 오늘 하루의 첫 단추를 어긋나게 끼우게 된다. 집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우산을 샀다. 우산을 쓰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회사에 도착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부터 타이트하게 잡힌 스케줄 덕분에 윤영은 손쉽게 걱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전 02화 오늘은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