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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마뱀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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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Oct 23. 2021

나의 모래성이 무너졌다

#4




“윤영 멘토님, 상담하신다고 자리 비운 동안에 어제 상담받았던 학생이 아카데미 등록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더라고요. 제가 대신 안내 도와주고 서류는 책상 위에 놔뒀어요.” 윤영은 특유의 반달 눈으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감사해요. 이렇게 매번 도와주시고.” 고마운 마음에 서랍에 넣어 두었던 소분 된 견과류 믹스를 옆자리 동료에게 건넸다. “에이, 제가 자리 비웠을 때는 윤영 멘토님이 도와주셨는데요. 다 상부상조죠. 감사해요. 맛있게 잘 먹을게요.”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그렇지. 견고하게 쌓아 올린 나의 행복이란 모래성이 파도 한 번에 무너질 리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 엉덩이 부근이 또다시 욱신거렸다. ‘뭘 잘못 먹었나?’ 하지만 소화불량으로 오는 복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곧 괜찮아지겠지.’ 내선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SKY 취업 아카데미 멘토 이윤영입니다.”

“….”

“여보세요?”

“우산 왜 안 쓰셨어요?” 


분명했다. 이 목소리는 어제 인터넷 기사 속 인터뷰를 보고 윤영을 찾았다던 학생의 목소리였다. 순간 너무 당황한 윤영은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내렸다.


‘철커덕’


사무실이라는 공간과 이질감이 드는 둔탁한 소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윤영에게로 쏠렸다. “하하, 광고 전화네요. 죄송해요.” 윤영은 놀란 기색을 숨기며 애써 웃어 보였다. 이내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엉덩이 부근이 또 욱신거렸다. 확실히 신경통인 듯했다. 고개를 숙여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책상 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열어 어제 버렸던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꺼냈다.


윤영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포스트잇에 적힌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윤영의 오른쪽 눈이 불그스름하게 충혈되며 핏발이 섰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털컥’


윤영은 그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떨어트렸다. 휴대전화는 ‘틱’, ‘탁’, ‘톡’ 소리를 내며 회전하다 두 계단 아래에 떨어진 채 액정에 금이 갔다. 윤영의 소소했던 일상에도 금이 간 걸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단서가 또 추가됐다.


넷째, 스토커는 자신의 존재는 알리지만 잡힐 생각은 전혀 없다.


다분히 악질적인 의도였다. 상대방의 불행한 반응을 지켜보며 무너져 내리는 걸 즐기는 기생충.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 다른 사람의 손실이나 고통을 보며 환희와 기쁨을 느끼는 족속들. 이 새끼는 암만 봐도 정신병자일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변태였다. 아무튼 제정신이 아닌 녀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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