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도마뱀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끼 Oct 23. 2021

미추어 버리겠네

#6





아까는 화가 났는데 지금은 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욕실 거울 속에 비친 윤영의 꼬리뼈가 불룩 솟아 죽순처럼 비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하..!” 헛웃음이 났다.


이제는 왜 자신이 미치지 않는 걸까 신기할 지경이었다. 윤영의 의식은 이제 해탈과 열반 그 사이 어디가 즈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패닉이 오지 않도록 정신을 최대한 바로 잡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왜 일어났단 말인가. 생각이 폭포수처럼 끝없이 쏟아졌다. ‘꼬리뼈는 흔적기관이 아니었던가…. 아침부터 엉덩이 부근이 뻐근하고 아팠던 게 설마 이것 때문이었나? 이 상황은 선 넘었어. 이 정도면 내 망상일지도 몰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잖아?’


윤영은 손을 들어 자신의 꼬리뼈를 더듬더듬 만져봤다. 제법 단단하고 미끈한 감촉의 꼬리뼈가 손바닥 감각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망상은 아닌 듯했다. TV에서 자주 봐와서 너무나 상투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하고 싶어 볼을 꼬집어 봤다. 맨들하고 보들보들한 볼살의 촉감도 그대로 느껴졌다.


윤영은 허겁지겁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포털사이트의 검색엔진에 ‘꼬리뼈’라고 쓴 후 검색해봤다. 거미줄처럼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통해 꼬리뼈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그녀가 제일 먼저 찾아본 건 백과사전이었다. ‘설마 내가 평생 알고 있던 상식이 상식이 아닌가?’


꼬리뼈(미추, 尾椎) [coccyx]: 여러 개의 미추(꽁무니뼈)개가 골결합하여 이루어진 뼈이다. 꼬리가 없는 동물의 경우에는 보통 이것이 흔적기관으로 남아있다.


‘뭐, 미추? 지금 장난쳐? 하다 하다 진짜 미치다 못해 이젠 미추어버리겠네.’ 결론적으로 윤영은 미치지 않았고 꼬리뼈에 대한 정의대로 이건 흔적기관이어야 마땅했다. 진화 과정에서 발달하지 못했거나 기능을 상실해 흔적만이 남은 상태 말이다. 윤영은 살면서 꼬리가 있는 사람은 희귀한 일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해결책을 생각하는 그녀의 머릿속에서도 이 일만큼은 해결할만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인데 이건 굳이 표현하자면 사고였다. 흔적기관이어야 마땅한 그녀의 꼬리뼈에 도대체 왜 죽순 같은 꼬리가 돋아났단 말인가.


꽤 오랜 정적 끝에 윤영은 최대한 차분하게 샤워를 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침에 울릴 휴대전화 알람 설정이 문제없이 잘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침대에 누웠다. 당연하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짹짹’


참새 소리에 찌푸리며 눈을 뜬 윤영은 처음엔 평소보다 해가 좀 밝다고 생각했다. ‘어? 느낌이 조금 싸한데?’ 

지각이었다.




이전 05화 산 넘어 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