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났다. 윤영은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었다. 돋아난 이 망할 꼬리를 가려야 했으므로 폭이 풍성한 롱스커트를 집어 들어 입었다. 이 옷이라면 커다란 꽃무늬 패턴이 시선을 분산시켜서 비죽이 튀어나온 꼬리뼈를 거뜬히 가려줄 것이다. 얼굴엔 대충 자외선 차단제만 치덕치덕 바르고 립밤을 챙겼다.
윤영은 지하철역으로 달음박질쳤다. 아니 사실 마음은 이 엉망이 된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또 꼬리뼈 부근이 욱신거렸다. 매일 오던 경로대로 지하철을 탔다. 다른 호선으로 환승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직장으로 뛰어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팀장이 윤영을 따로 불렀다. 윤영은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팀장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윤영 씨, 일은 참 잘하고 다 좋은데 말이야. 조금만 일찍 다닐 수 없을까? 내가 2분씩 5분씩 찔끔찔끔 늦는 건 다 눈감아 줬었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 급여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아 가는데 이런 거로 자꾸 뒤에서 말 나오면 내 입장도 난감해. 근태관리도 좀 해줘.”
“네, 죄송합니다. 이런 일 앞으로는 없도록 할게요.”
사실 출근 시간을 너무 타이트하지 않게 조금씩 늦는 건 비단 윤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 사무실의 문화였다. 하지만 암묵적으로는 비밀인 급여 명세가 소문으로 공유된 눈치였다. 역량대로 받아 가는 급여를 남들이 음흉하게 뒤에서 캐내어 욕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저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럴 거면 자기들도 열심히 해서 많이 받아 가면 되잖아.’ 볼멘소리는 속으로만 삼켰다.
자리로 돌아온 윤영은 평소에는 업무에 의욕적인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이 상황에서 제정신이라면 업무에 집중이 안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만약 이 상황을 다 알면서도 기계처럼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공감 능력이나 양심이 결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내 상황을 직접 겪은 사람이 있으면 제대로 걸어 다니거나 먹고 잘 수나 있을까?’ 앞으로는 대단하지도 않은 일상을 살아내는 자체가 대단하게 될 것이다. 화성에 혼자 착륙하게 된 것과 지금 상황의 생존 난이도를 속으로 비교해봤다. 기가 차고 한숨이 나왔다.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차는 게 아니라 그저 처량했다.
그날 윤영은 종일 몸만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온통 스토킹과 돋아난 꼬리에만 쏠렸다. 공과 사를 구별하기에도 이미 상황은 선을 넘었다. 행여나 이런 업무태도를 그 누가 질책한다면 네가 내 입장이 되어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윤영은 일단 꼬리는 차치하고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부분 만큼은 공권력의 도움을 받자고 결심했다.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며 일을 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온 선량한 시민인 윤영을 국가가 보호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