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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마뱀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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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Oct 23. 2021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8




“물리적으로 피해를 본 게 아니면 사건접수도 어렵고요. 처벌도 불가능합니다.”


넋 빠진 사람처럼 회사에 있다가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봐가며 반차를 내고 민원접수를 하러 온 윤영에게 맨 처음 경찰이 건넨 답변이었다.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손이 떨리고 표정엔 스토커에 대한 경멸과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찰에 대한 야속함이 서렸다.


“아니, 정황상 누가 봐도 스토킹을 당하고 있고,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인데 왜 사건접수나 처벌이 안 되는 거죠? 이해가 안 가네요.”

“법이 그래요. 법이. 어떡합니까. 사정은 딱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저희도 어찌 보면 공무원인데 정의구현 한답시고 위법이 아닌 일을 접수해서 처리할 수는 없어요. 저도 안타깝지만, 법이 그렇게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뭐지. 이 무책임한 일 처리는?’ 그동안 나라에 냈던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경찰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의 법은 전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진지하게는 세금으로 냈던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매우 황당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윤영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순전히 피해자일 뿐인데….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당하기만 해야 했다. 순간 고구마 200개를 한꺼번에 먹은 듯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윤영은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경찰서를 나왔다. 꼬리 부근이 또 욱신거렸다. 일단은 쉬어야 했다.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누적된 스트레스로 멀쩡했던 윤영이 진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그녀의 피부는 점점 더 파리해졌다. 이마에는 한두 개의 뾰루지도 올라왔다. 볼이 패이고 눈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졌다. 며칠 상간에 삶이 이렇게 피폐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스토킹뿐만이 아니라 꼬리뼈에 기형적으로 돋아난 죽순 크기의 꼬리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윤영의 주변을 둘러쌌다.


윤영은 지하철을 3번이나 잘못 타고 집에 겨우 돌아왔다. 이제는 무슨 정신으로 귀가를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한번은 방향을 반대로 타서, 한번은 호선을 잘못 타서, 마지막으로는 맞게 탔는데도 불구하고 잘못탄 줄 알고 급하게 내렸다. 윤영 위로 드리워진 거대한 불행이 그녀를 잠식시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뒤 뜨거운 물로 씻으며 흐트러진 정신을 최대한 가다듬으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제는 윤영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탈의 후 비친 거울 속 윤영의 꼬리뼈는 통으로 파는 연근만큼 길쭉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수증기가 올라오는 후덥한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맞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쏴아아’하고 샤워기를 통해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로 그녀의 울음소리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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