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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돋아난 꼬리는 신경과 근육도 온전히 연결됐는지 힘을 바짝 주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이 정도라면 롱스커트를 입으면 어찌어찌 가릴 수 있을 듯했다.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긴 치마로 가릴 수 있는 꼬리 때문에 하게 되다니 정말 기괴했다.
윤영은 샤워를 끝내고 나왔지만,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박시한 티셔츠에 롱스커트를 입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그러고는 진열 냉장고 주류 판매대에서 관성적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라거 맥주 큰 캔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갔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요?” 그녀와 안면이 있는 편의점 주인이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윤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즘 좀 신경 쓸 일이 많아서요.” 또 꼬리가 아릿했다. 대도시에 사는 이웃사촌들의 암묵적인 관례처럼 편의점 주인은 윤영의 대답에 고개를 끄떡이고 나서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당부만 한 채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맥주캔이 담긴 비닐봉지를 집어 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삐빅-삐빅’ 도어락은 파란불을 깜빡였고 문은 열리지 않고 그대로였다. 윤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삐빅-삐빅’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등 뒤에 오한이 돋았다. 설상가상이라는 사자성어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규모의 감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도어락 비밀번호는 윤영의 대학생 때 학번이었다. 그녀가 도어락 비밀번호로 매번 사용하는 학번을 잊어버릴 리 만무했다. 그리고 생년월일이나 차량번호도 아니고 그녀의 학번을 외우는 사람은 아마 윤영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삐빅’
‘….’
윤영은 현관문 옆에 조용히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오밤중에 집주인에게 연락해 수리기사를 부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비밀번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도어락은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었다. 깨진 휴대전화를 들어 인터넷을 켜고 검색엔진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포스팅과 Q&A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도어락 비밀번호 분실’을 검색했다. 마찬가지로 주로 새로 바꾼 도어락 비밀번호를 사용자가 잊어버려서 생기는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주를 이뤘다.
윤영은 검색 후 뜨는 포털사이트 탭의 세부 카테고리 중 뉴스를 눌렀다. 시선을 따라 제목만 훑어보고는 쭉쭉 아래로 내려갔다. 딱히 해당하는 내용이 없는 거 같아 이번엔 2페이지로 넘어갔다. 계속해서 아래로 내리는데 그녀의 시선을 멈추게 한 뉴스 제목이 보였다.
‘디지털 도어락 해킹 1분이면 가능, 비밀번호 알아내 범죄에 활용’
순간 귀에서 ‘띵-’하는 이명이 들렸다. 꼬리가 울컥거리며 길어졌다. 이제는 캥거루의 꼬리처럼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상태까지 자랐다.스토킹의 전후 관계는 알 수 없더라도 이젠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웠다. 현기증이 나고 식은땀이 나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일순간 윤영을 덮쳤다.